"화장실에는 예쁜 여신이 있단다. 화장실을 매일 깨끗이 청소하면 여신처럼 미인이 된단다."
화장실 청소를 싫어하는 손자에게 상냥하게 타이르는 할머니의 말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화장실의 신'이라는 노래가 히트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자신의 생과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가슴 따뜻한 곡이다. 그렇다 치고, 화장실에 정말 신이 있는 것일까.
일본어는 불결한 것이나 나쁜 것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다른 말로 바꾸어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을 '기피 용어'라고 하는데, 화장실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학교나 공공시설에서도 '변소' 대신에 '화장실' '손 씻는 곳'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변소에 비하면 서양의 '토일렛'(toilet)이 불결한 이미지를 다소 불식시켜 주기는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토일렛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배설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풍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대지진 때, 우리 집에는 일주일 가까이 단수가 계속되었다. 가장 곤란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상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할 수 없이 볼일을 보러 대피소에 가면, 수세식이 아닌 임시 화장실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절망스러운 광경이었다. 본능적으로 생존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다.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안정감과 위생적인 현대의 생활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실감했다.
예로부터 화장실은 원한이 깃든 장소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자살 장소로 이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에는 '화장실의 하나코 상'이라는 괴담이 있다. 학교 화장실 문을 세 번 노크하면 '하나코 상'이 대답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1980년대부터 어린이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해서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 학교 건물 밖에 사람들이 접근을 꺼리는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수험 공부에 시달린 여학생이 그곳에서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하나코 상'이나 여학생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인생의 마지막 고통을 화장실에서 맞으려 할까. 화장실은 결코 깨끗하고 화려한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안에서 잠글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혼란스런 사회에서 자신만의 닫힌 공간에서 조용히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 화장실에서 혼자 밥을 먹는 '변소 밥'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왕따를 당해 친구가 없는 아이가 화장실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을 것 같지만,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변소 밥을 먹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친구가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이다. 어느 학자는 학교와 직장에서 함께 식사를 할 친구가 없는 데 대해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는 것을 '점심 친구 증후군'이라 불렀다. 타인과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자신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일본인 특유의 질병이다. 화장실은 이 공포를 벗어날 수 있는 쉼터이다.
만약 화장실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인간의 고통을 많이 목도했을 것이다.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사람, 피어오르는 연기에 신경 쓰면서도 참지 못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 등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불결하다고 입에 담기를 꺼리는 화장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장소이다. 나이가 들고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먹고 배설하고, 웃고 울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더러운 것을 피해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은 아니다. 더러운 것을 자신의 손으로 깨끗하게 만들려는 삶이야말로 정말 아름답다. 우리를 대신해서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의외로 쉽게 잊어버린다. 화장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시험받는 곳이다. 다음 사용자와 자신을 위해 화장실을 청소해 두자고 생각하는 순간 얼굴도 마음도 여신처럼 아름다워질 것이다.
(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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