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녹록잖은 세상

살면서 억울한 일이 적잖게 일어난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소외당하고 미움을 받기도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학벌이나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기도 하고, 누명을 쓰거나 이유 없이 해를 입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녹록하지 않다.

나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 준 사람들이 내가 받은 슬픔과 고통을 똑같이 느껴 보아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정의가 바로 설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악을 악으로 갚을 때 그 악의 세력은 더욱 번창해 갈 뿐이다. 사회에 질서와 정의를 세우는 것은 인간이 만든 법과 힘일 것 같지만, 사실은 더 깊은 곳에 있는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이다. 우리 삶에서 만난 억울한 일들을 그저 억울함으로 안고 살면 그것은 억울한 채로 남아서 슬픈 인생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을 적극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면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되고 축복이 된다.

'녹록하다'와 '녹녹하다'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녹록하다'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다, 만만하고 상대하기 쉽다라는 뜻이다. "나도 이제 녹록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 "내가 그 사람에게는 녹록하게 보였나 보다." 로 쓰인다. 비슷한 말로는 평범하다, 하잘것없다가 있다. '녹녹하다'는 촉촉한 기운이 약간 있다, 물기나 기름기가 있어 딱딱하지 않고 좀 무르면 보드랍다는 뜻이다. "녹녹하게 반죽을 하다."로 쓰인다. 비슷한 말로 눅눅하다, 말랑하다, 부드럽다가 있다.

'녹록지 못하다' 와 '녹록치 못하다' 중에서 바른 표기는? 어간의 끝음절 '하'가 줄어진 형태로 관용되고 있는 형식은 안울림소리 받침 뒤에서 나타난다. '녹록하다'의 '녹록'은 안울림소리 받침인 'ㄱ'으로 끝나므로 '하'가 아주 줄어 '녹록지' 의 형태로 쓰인다. '녹녹지 못하다'도 마찬가지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한다. 특별히 금슬이 좋고 사랑이 깊은 부부일수록 더욱더 그렇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면 함께 기쁘고, 슬퍼하면 같이 슬프고, 아파하면 그 고통이 같이 느껴지는 것이 그들의 마음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닮을 수밖에 없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수명 연장에도 기여한다는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는 싸움과 증오로 점철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보다 평균 4년 정도 장수한다고 한다. 편안한 상태에서 많이 분비되는 세로토닌 수치가 높을수록 면역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녹록잖은 세상살이에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남편을 서로서로 아껴 주자.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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