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면 마을이 물에 잠기는데 수십억원을 들여 제진기를 설치하면 뭐합니까."
10일 오후 5시 대구 북구 노곡마을 입구.'마을 입구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주민센터 방송을 듣고 나온 주민 50여 명이 제진기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제진기는 시설물 안에 섞인 이물질을 제거하는 설비를 말한다. 한 주민이 북구청 관계자에게 "제진기를 설치한 뒤로 자꾸 마을이 물에 잠긴다"며 삿대질을 했다. 노곡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홍모(44'여) 씨는 "비가 올 때마다 마을에 물난리가 나니 불안해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며 "어제도 비가 많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에서 일하다가 곧바로 집으로 달려왔다"고 화를 냈다.
비만 오면 '수마'(水魔) 걱정에 시달리는 노곡동 주민들은 이날 또다시 마을 초입부터 동네 안쪽 70m까지 어른 무릎 높이 정도 물이 차올라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지난해처럼 집 안방까지 물에 잠기는 큰 침수 피해는 없었지만 마을 입구에 위치한 저지대 가옥 현관에 30㎝가량 물이 차고 인근 슈퍼마켓에 쌓아둔 과자와 컴퓨터가 빗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침수 피해를 본 슈퍼마켓 업주 김모(39'여) 씨는 "석 달 전 이 가게를 인수해 이사왔는데 앞으로 비가 올 때마다 걱정하게 생겼다"며 "물이 불어나자마자 급한 대로 물건을 높은 곳에 올려뒀지만 불안해서 오늘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물난리를 겪지 않은 주민들도 크게 놀랐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김다영(17'경상여고) 양은 "집이 높은 곳에 있지만 마을이 온통 물바다여서 지난해처럼 피해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북구청이 제진기만 믿고 자연 배수와 연결된 수문 두 개를 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민 김영준(45) 씨는 "구청 직원들이 제진기와 연결된 수문 한 개만 열어두고 자연 배수로로 물이 빠져나가는 수문 두 개는 닫아서 물이 차올랐다"며 "5대나 설치한 펌프기도 사용하지 않는데 이럴 거면 왜 큰돈을 들여 설치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북구청 건설과 관계자는 "게이트펌프가 감당할 수 있는 빗물의 양은 초당 8t 정돈데 10일에는 그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려 마을에 물이 찬 것이고 물은 7분 만에 빠졌다"며 "금호강 바깥 수위가 상승할 경우 수문을 닫고 게이트펌프로 물을 퍼내야 하기 때문에 수문을 닫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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