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름방학 눈 앞…달아오른 私교육, 등골휘는 학부모

보강·특강 비용 추가 안할수도 없는 노릇…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사는 직장인 이근형(가명'46) 씨는 아이들의 방학이 두렵다. 이 씨의 고민은 학기 중보다 더 많이 드는 학원비 때문. 고2 큰딸과 중3 작은아들의 이번 달 학원비만 2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지난달 경우 큰아이는 국어, 수학, 영어, 과학으로 110만원, 작은아이는 수학, 영어로 60만원이 들었는데, 여름방학 특강비를 더하니 200만원이 넘어버렸다. 맞벌이 부부인 이 씨의 월 소득의 70%나 되는 큰 금액이다. 이 씨는 "부부가 모두 일을 하다 보니 작은아이의 경우 오전 10시부터 학원에 가서 학원 수업을 듣거나 학원 공부방에서 자습을 하면서 오후 4, 5시까지 하루 종일을 보낸다"며 "수학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해 20만원짜리 특강을 신청하고 나니 평소보다 학원비가 더 나가게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래도 내 경우는 중간 정도"라며 "방학을 이용해 아예 전 과목을 통째로 과외를 하는 집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방학이 너무 힘겹다고 했다.

◆여름방학, '학원은 성황, 학부모는 휘청'

여름방학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사교육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학기 중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자는 방학의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학원, 교습소, 공부방 등 사교육 시장으로 학생들이 내몰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오후 10시 이후 학원 심야 교습 규제 영향으로 방학 중 학원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다 EBS 강의, 대입 논술 등 대학별 고사, 국가영어능력시험(NEAT) 등 분야가 늘어나면서 학원가가 제대로 성수기를 맞은 모습이다.

학원가들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너도나도 여름방학 특강을 개설하고 홍보 전단지를 뿌리는 등 기지개를 켜고 있다. '보충' '특강'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수업 시간표를 빽빽이 짜는 것은 예사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심야 교습 시간 제한으로 평일 강의가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는 학원이 속출했다"며 "여름방학 때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어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학생 유치를 위해 단골 학부모의 생일 때 꽃다발을 배달하는 학원이 등장할 정도. 이맘때 학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아 두면 2학기 때도 재수강, 같은 학원을 다닐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학원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논술학원과 영어학원. 수능시험이 쉽게 출제되면 논술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논술학원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의 한 대형 입시학원만 해도 지난해 7월 초 논술강좌 수강생이 1천508명이었으나, 올해는 2천62명으로 36.8%나 늘었다. 이곳은 여름방학이 본격 시작되면 수강생이 더 늘 것으로 보고 있다.

NEAT는 영어 사교육 시장에 호재가 되고 있다. 평소엔 중학생이 대세를 이뤘지만 NEAT 발표 이후 고교생까지 대상이 넓어졌다. 수능 외국어영역 시험 대체 여부는 내년 하반기 확정되지만, 학원가에선 도입이 확실하다며 학생들의 수강을 부추기고 있다. 수성구 한 어학원 측은 "학교에서 말하기, 쓰기 지도가 안 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영어학원으로 몰리고 있다"고 했다.

학원 심야 교습 규제를 피한 개인과외 교습도 성행 중이다. 한 단과 학원 관계자는 "심야 교습 시간 제한이후 단속 부담을 감수한 채 개인과외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며 "소규모 그룹 과외는 과목당 한 달 30만~50만원 선, 일대일 개인과외는 100만~150만원 선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고2 학부모 이모 씨는 "수능에서 EBS 출제 비율이 70%를 차지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EBS 교재'강의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강의도 생겨났다"며 "국가에선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시험을 쉽게 출제한다고 하는데, 되레 사교육비 부담은 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교육 올인보다 진로 설계 먼저

"어떤 과목에 비중을 둬야 하고 어느 학원을 선택해야 할지 그림이 뚜렷이 그려지지 않아요."

이영숙(44'여'대구시 수성구) 씨는 고 1년생 아들 때문에 초조하다. 상위권 성적이지만 이대로라면 명문대 진학이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도는 '카더라 통신'은 저마다 달라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여름방학 때 학원 안 보내는 학부모는 극소수일 겁니다. 하지만 학원의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녀봐도 간단한 공부법이나 대학 전형을 소개하는 데 그치더군요. 어느 학원의 어떤 과목을 수강해야 할지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학부모들의 고민도 늘고 있다. 학원가를 기웃거려봐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진로와 진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담할 창구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학 희망 대학과 학과를 정한 뒤 학원에 보내려 해도 귀동냥으로 듣는 학원과 강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일쑤다.

중 3년생 아들을 둔 박모(43'여) 씨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진로 컨설팅을 한다는 곳이 있어 아이를 데려갔더니 '의사'로 나왔지만, 잠시 기분이 좋았을 뿐이다. 현재 아들이 공부하는 걸 봐서는 이루기 어려운 꿈이다. 더구나 그 학원은 진로에 대한 설명만 늘어놓을 뿐,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밑그림을 그려주지 못했다. 일단 학원에 보내 고교 수학 과정을 선행학습시킬 생각이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고 3이 될 때까지 몇 년 여유가 있지만 지금 아이 성적은 중위권에 불과해요. 수험생이 되기 전까지 학습 전략과 챙겨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의사가 적성에 맞다'는 말만 하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고 2년생 딸의 어머니 이모(46) 씨는 내년 수험생 학부모가 될 때를 미리 그려보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앞으로 수능시험은 자격고사의 성격을 띠게 돼 사실상 대학별 고사 성격인 논술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학교에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불안하다는 것.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면 논술을 준비해야 한다는데 학교 수업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보여요. 결국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대구에서 자연계열 논술을 제대로 가르칠 학원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예요. 곧 서울 쪽 기숙학원으로 아이를 보낼지 결정할 생각입니다."

고 1년생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에듀팟'이라는 고민거리까지 떠안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 1년생부터 에듀팟에 '창의적 체험활동' 과정을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 1년생은 현재 수능 수준인 A형과 보다 쉬운 수준인 B형으로 나눠 치르는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 적용 세대다.

"수능시험이야 어떻게든 잘 치르게 돕겠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에듀팟이에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에듀팟에 담을 내용도 풍성해질 텐데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요. 면장일도 알아야 하죠. 오죽하면 학원에서라도 3년 동안 책임지고 꾸준히 관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에듀팟이란?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교 내·외의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을 기록, 관리하는 온라인 시스템(edupot.go.kr)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의 4가지 영역인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중심의 활동 내용에다 자기소개서, 방과후학교활동 등을 포함하는 교과 외 활동에 학생이 얼마나 성실히 참여했는지 과정과 결과를 담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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