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뮤지컬 아르바이트

대구의 젊은 예술가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 번 이야기하고 싶다. 배고파야 예술이 나오고 고통 속에서 창작이 나온다는 고질적인 말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사회에 대한 반감(反感)일까.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예술인에 대한 배려가 충분치 못한 안정된 창작 환경의 부재(不在)일까.

6월 초 모 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뮤지컬 시상식(The musical awards)에서 뮤지컬 '서편제'로 극본상을 받은 조광화 씨 수상 소감을 곱씹어보고 싶다. 일본의 유명 극단 '사계'가 최근 한국공연을 추진하려다 무산된 사례를 들며 "이 땅을 일본 공연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문화 침략"이라는 데 동참하고 뜻을 같이했지만 돌이켜보니 "대한민국 뮤지컬은 이미 외국에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다. 외국 제작진의 수입은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 뮤지컬 스태프의 희생은 끊임없이 강요당하고 있다"며 국내 창작 스태프의 열악한 여건을 한탄했다. 또 하나의 여담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조승우 씨는 자신이 출연한 창작 뮤지컬은 겨우 3편뿐이었다고 하면서 "어쩌다 라이선스(License) 뮤지컬을 주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움직이고 요동치게 했던 작품 중에 창작극은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뮤지컬의 현실을 빗대어 볼 때 대구에서 창작하는 작가나 작곡가, 연출가, 안무가들이 과연 공연생산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나. 아니, 살아갈 수 있을까. 대구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들어 이런 질문을 해도 대부분의 대답은 '현실적으로 어렵다'일 것이다.

필자가 뮤지컬 제작에서 피부로 느끼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작가, 작곡가, 연출가, 안무가 등 많은 스태프는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개월의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작품에 대한 보상금이나 저작료는 일부 서울의 스타 제작 스태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반 회사원 1개월 월급 정도를 받게 된다. 이들은 일반 직장인들처럼 매달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기에 생계를 위해서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든 다른 안정된 직업이나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서 떠나게 된다. 정작 본인이 전업으로 꿈꿔왔던 창작 예술 활동조차 아르바이트처럼 하게 되는 것이다.

뮤지컬은 음악, 연극, 무용, 무대, 조명 등 각각 다른 장르의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 집중하며 독립 운동하듯이 전투적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각각 다른 직업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일들을 하며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아르바이트 형태로 모이게 된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열리는 공연문화 중심도시에서 아르바이트로 뮤지컬이라는 총체적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없는 형편에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없는 시간, 없는 돈 써가며 의지를 불태우는 대구의 몇몇 창작 예술인들의 노력이 언젠가 빛나길 기대한다.

윤정인<뮤지컬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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