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3시 대구 동구 롯데마트.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마트 안은 쇼핑객으로 붐볐고 물건을 계산하는 직원들의 손도 바빴다. 바코드를 읽는 '삑'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같은 시간 인근의 목련시장은 활기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적이 뜸했고 주인이 자판을 비운 곳도 눈에 띄었다. 지나던 손님 한 명이 "장사해요?"라며 채소가게로 들어섰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롯데마트 율하점이 문을 연 지 1년 만에 인근에 위치한 20년 전통의 목련시장이 무너져버렸다.
초복이 다가오고 있지만 북적이던 예전 목련시장은 없었다. 생닭을 팔고 있는 정영숙(39'여) 씨는 "마트가 개점하기 전에는 복날 3, 4일 전부터 닭 사러온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며 "올해는 가게세를 내기도 팍팍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홍수(52'과일가게 운영) 씨도 "작년까지는 복날이 다가오면 수박을 300~400개 정도 주문했다. 올해는 100통도 주문을 안 했으니 시장이 진짜 망한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 손님이 줄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큰길 맞은편 1㎞ 지근거리에 롯데마트 율하점이 개점하면서부터다.
마트가 들어서면 시장이 고사하는 것은 뻔한 상황이었지만 상인들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롯데마트는 대구시가 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는 도심순환선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묘히 비껴간데다 시의 승인이 난 상태인 탓에 영세 상인들의 외침은 공허했다.
날이 갈수록 시장 매출은 눈에 띄게 줄었다. 마트가 들어서기 전과 대비해 적게는 반 토막 많게는 80%까지 매출이 떨어진 가게가 속출했다.
반찬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마트에서 어떤 반찬을 파는지 보러 갔다가 10년 넘게 우리 집만 이용하던 단골손님과 마주쳤다"며 "단골까지 뺏기고 나니 롯데마트 쪽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목련시장 전체 70여 개의 점포 중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은 50여 개뿐이다. 1년 만에 20여 개 점포가 문을 닫고 시장을 떠난 것.
시장의 자구노력도 물거품이었다. 지난 1월 롯데마트의 쥐꼬리만 한 지원으로 로비를 막아주는 천장 천막과 하수관 공사를 새롭게 했지만 손님들의 발길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비 지원의 '전통시장 현대화사업' 추진도 여의치 않았다. 상인회장 김영한(61) 씨는 "시장 건물을 13명이 소유하고 있는데 1인당 몇천만원을 부담할 여력이 없다"며 "우리처럼 작은 시장이 대형마트를 상대하는 건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월 대구 19개 대형마트(매장면적 3천㎡ 이상) 판매액은 1천535억3천만원으로 전월 1천401억6천만에 비해 9.5%(133억7천만원) 증가했으며 전년 동월 1천389억3천만원에 비해서도 10.5%(146억100만원) 늘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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