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29.고생끝에 찾아온 행복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 사는 아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30여년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언니는 포대기로 동생을 등에 업고도 책을 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등에 업힌 아이는 왜 꽃을 물고 있을까요? 지금으로선 답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 천진난만한 눈빛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두 아이의 모습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포대기입니다. 어릴 적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닐 때면 포대기에 아이를 들쳐업은 친구 엄마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아기를 업고 서서 이야기도 나누고, 콩나물도 다듬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습니다. 노리개 하나만 쥐어주면 아이는 엄마 등에서 그저 행복했습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사진=김수열(제19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은상) 글=김수용기자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 사는 아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30여년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언니는 포대기로 동생을 등에 업고도 책을 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등에 업힌 아이는 왜 꽃을 물고 있을까요? 지금으로선 답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 천진난만한 눈빛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두 아이의 모습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포대기입니다. 어릴 적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닐 때면 포대기에 아이를 들쳐업은 친구 엄마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아기를 업고 서서 이야기도 나누고, 콩나물도 다듬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습니다. 노리개 하나만 쥐어주면 아이는 엄마 등에서 그저 행복했습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사진=김수열(제19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은상) 글=김수용기자

올해로 직장생활 15년째로 접어드는 박모(43) 씨는 곧잘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무한 반복 두더지게임"이라고. 옛날 오락실이나 유원지에 가면 흔히 만나는 '두더지 게임'은 튀어나오는 두더지 모형을 망치로 내려쳐서 점수를 얻는 오락이다. 신나게 고무망치를 두드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게임은 몇 분만에 끝난다. 그런데 다시 불이 켜지고 두더지가 불쑥불쑥 튀어오른다.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한다. 잠시 뒤 게임이 끝나는가 싶더니 다시 등장하는 두더지. 팔과 허리가 쑤셔오고,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니 생각할 겨를도 없다. 생각하면 늦다. 그저 두들겨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찾는 행복은 없다(?)

현대인의 삶은 마치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쉼없이 걸어가는 여행자 같다. 여정에는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불는 날이 있는가 하면, 대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작열하는 태양이 지배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흐린 날이 개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날도 있고, 폭염을 식혀주는 한줄기 소나기가 내리는 날도 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어느 작은 마을에 들를 때도 있고, 문명의 이기들로 넘쳐나는 대도시를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마뜩지 않다. '이게 아니야'라며 끊임없이 되뇌인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 교수인 마이클 폴리는 '행복할 권리'(부제 욕망과 좌절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21세기적 삶)이라는 책을 썼다. 사실 영어 제목은 '부조리의 시대'(The Age of Absurdity)다. 그는 첫 장(章)에서 '당신이 찾는 행복은 없다'고 전제한 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행복)의 조건은 탈진과 쇄신의 순환이기 때문에 상승은 하강한 뒤에만 가능하며, 영구히 위쪽에만 있으려는 시도는 실패한다는 것. "고통스러운 탈진과 즐거운 재생의 순환 외에 지속적인 행복은 없다. 이 순환의 균형을 깨뜨리는 자(중략), 살아있다는 데서 오는 기초적인 행복을 망친다." 결국 지속가능한 행복은 없다는 뜻이다.

며칠간 씻지도 못해서 온 몸에선 퀴퀴한 냄새가 나고, 허기진 배는 무엇이든 넣어달라고 아우성치며, 피폐해진 정신은 잠시 쉬어가라고 주문을 왼다. 그런 중에 만난 어느 작은 마을. 잠시 쉬어간 들 누구 하나 나무랄 사람은 없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행복은 이런 작은 게 아니야. 좀 더 가야해. 더 크고 멋지고 대단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다시 '무한 반복 두더지게임'은 시작된다. 두더지가 솟아오르건 말건 잠시 망치를 내려놓으면 될 것을. 하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도달한 그 곳엔 여전히 작은 마을뿐이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고생 끝에 찾아온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아예 행복의 씨앗이 되는 고생조차 없애려는 시도다.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신정근 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 이외의 어떤 고생도 자식에게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을 고생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려고 한다. 그 결과 부모가 꾸지람을 하거나 성적을 나쁘게 받으면 쉽게 죽음의 유혹을 느끼게 됐다. 나는 이것이 고생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긍정 심리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우리는 노동을 불유쾌한 것, 하기 힘든 것,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일에서 벗어나 어렵게 얻은 여가시간을 활용하려 하지만 막상 무엇을 할 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한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했다. 하지만 막상 현대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끊임없는 고통일 뿐이고, '떠나는 것'은 미래에 찾아올 지 모르는 행복을 걷어차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에서 그 낙(樂)은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고생과 함께 있는 것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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