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 16년간 언론중재위원회 근무 후 퇴임한 김일경 전 대구사무소장

"명예훼손·보도피해 중재신청 해마다 증가세"

"언론매체의 기사로 인한 명예훼손과 피해에 대한 중재신청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구'경북의 경우 방송이 20%, 인터넷 매체가 20%, 신문과 잡지가 60%를 차지하고 있어요."

16년간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한국방송광고공사 5층에 있는 언론중재위원회 대구사무소장을 지내고 6월 말에 퇴임한 김일경(58) 씨는 재직하는 동안 연평균 30~35건의 언론중재신청을 조정해 왔다.

"조정신청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케이블방송, 인터넷언론 등 매체 증가와 권리보호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죠."

그는 이전엔 다소 억울한 내용의 기사나 보도가 나가도 '언론사와 싸워봤자 뒤끝이 좋을 리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오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추세로 바뀌었다고 했다.

"중재신청을 원인별로 보면 비리나 사회적 문제에 관한 것이 가장 많아요. 당사자에게 확인을 하지 않았거나 일방적으로 제보자의 주장에 무게중심을 두면 십중팔구는 중재 요청이 와요."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언론중재신청은 한동안 큰 관심을 끌었던 '황토흙 화장품' 보도였다. 그가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던 시절 유명 탤런트의 남편이 개발한 황토흙 화장품에 분인 황토흙에 인체 유해성분이 함유됐다는 보도가 나간 후 반품이 쇄도했고 결국 공장 문을 닫게 됐다. 하지만 그 보도는 오보였다.

"당시 중재위에서 화장품 사장이 눈물로 호소하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어요.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기사를 보도할 땐 한 번 더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언론의 '한건주의' 보도가 화장품 회사는 물론 그 종업원들 생계마저 끊게 한 결과를 낳았어요."

김 씨는 기사에 이해당사자 간 해명이나 반론은 꼭 함께 실어줄 것을 당부했다. 흔히 피해자의 항의에 대해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다' '마감에 쫓겼다'는 식의 해명을 하지만 면책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

"가장 바람직한 기사는 원천적으로 피해자가 없도록 하는 일이죠."

그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충고했다. 1981년 3월 발족한 언론중재위원회는 중재신청이 들어오면 14일 이내 종료하고, 길어도 3주 이내에 마무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 기간 안에 위원회는 쌍방의 조정이 쉽지 않으면 '직권조정결정'을 하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법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또 중재신청자와 언론사 양측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조정 '불성립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퇴임 후 인생 2막을 노인전문요양원에서 종사하기를 원하는 김 씨는 "보도 내용 중 혹 불미스런 일이 생겼다면 언론사는 피해자를 위로하고 달래주는 아량과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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