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여 일간 지속된 장맛비 때문에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채소 노점상, 일용직 노동자 등 서민들은 장맛비로 벌이가 크게 줄어들어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다.
◆비야 제발 그쳐라
13일 오후 대구 중구 태평로 대구역 맞은편.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자 이곳에서 노점상을 하는 이춘만(84) 씨는 바빠졌다. 고추와 호박잎, 양파 등 각종 채소가 가지런히 진열된 노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씨는 1주일 넘게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다. 손님이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
"비 때문에 손님들 다 빼앗겼어. 물가는 두 배로 뛰었는데 벌이는 반 토막이 나 죽고 싶은 심정이야."
이 씨는 반나절 호박잎 한 묶음을 팔고 1천원 받은 게 전부다. 장마로 과일과 채소값이 훌쩍 뛴 것도 걱정이다.
같은 시각 중구 성내동에서 만난 박현탁(61) 씨는 바닥에 떨어진 방울토마토를 리어카에 담고 있었다. 그는 이날 오후 2시까지 매상을 전혀 올리지 못했다. 장마철 그의 하루 매상은 3만원 정도다. 부인과 단둘이 사는 박 씨는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면 매일 나와 과일을 팔아야 하는데 요즘 비 때문에 장사를 제대로 못한다"고 푸념했다.
같은 날 중구 동성로. 이시령(가명'67) 씨는 반쯤 비어 있는 리어카를 끌고 한 가게 앞에 멈췄다. 그는 매일 동성로 인근을 한 바퀴 돌며 파지를 모은다. 이씨가 경상감영공원에서 대구시청 부근까지 약 1㎞ 정도 돌며 모은 파지는 신문지 뭉치와 종이 박스 3개가 전부다. 그는 "비가 계속 내려 몸도 힘들지만 파지가 줄어들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서민 어깨 누르는 장맛비
13일 오전 9시쯤 대구 남구 봉덕동 한 모텔 객실에서 P(50) 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모텔 업주(47)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모텔에서 기거해왔던 P씨는 10여 년 전부터 혼자 살며 막노동 일을 해왔다. 주변인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최근 장마 때문에 일감이 없자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구 중구 한 인력소개소 담당자는 "장마철에는 일감이 평상시의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올해는 장마철이 길어져 예년의 30% 수준"이라며 "요즘엔 아예 장마가 끝날 때까지 공사를 중단해 버리는 공사현장이 많아 더 힘겨울 것"이라고 전했다.
빗속을 뚫고 오토바이 배달을 해야 하는 이들도 장마가 야속하다. 동구 신암동의 한 오토바이 가게에는 수리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30분 동안 6명이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퀵서비스 기사들은 "장마철이 되면 빗물이 오토바이 엔진에 들어가 고장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대구기상대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대구에 551.1㎜의 비가 내려 1973년 이래 최고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황수영·황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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