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도 품격이 있고, 음식에도 계절이 있다.' 한정식 전문 음식점은 그 집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가보지 않고도 그 집의 분위기를 알려면 드나드는 단골손님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대구시 중구 남산 3동 프린스호텔 별관 맞은편에 있는 한정식집 '세종'. 이름이 정겹다. 앞마당은 들꽃 등 아름다운 화초가 가득하다. 통합 상황 관제시스템 전문회사 ㈜위니텍 직원들은 세종의 단골손님이다. 외국 손님이 회사를 방문할 때 접대하는 곳이다. 한국의 '깊은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음식점의 가장 기본은 '맛'이다. 하지만 단골손님은 그 집의 분위기와 주인 얼굴을 보고 가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한정식집은 더하다. 소문난 음식점은 맛과 분위기에다 주인의 멋도 곁들여져 있다.
세종은 1999년에 문을 연 전통 한정식 전문점이다. 문인, 화가 등 예술인이 단골이다. 주인 손정우(68) 대표가 폭넓은 사회활동을 하면서 이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연세대 출신인 손 대표 자신도 시인이자 그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이 있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다. 이뿐 아니다, 손 대표는 음식에 대해서도 철학이 있다. 1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내 손으로 가꾼 '참살이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결코 화려하진 않지만, 주인의 맘이 밴 소박하고 진실한 밥상이다.
'세종'은 마치 작은 갤러리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공간 곳곳에 미술작품이 맞이한다. 대부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화가들의 작품이다. 방마다 작가와 화풍이 다른 그림들이 전시돼 있어 식사를 하기 전 그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 대표는 그림마다 담긴 사연을 설명해 준다. 위니텍 김창욱(43) 경영관리팀장은 "손님접대를 할 때는 반드시 세종에 온다"며 "차분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라 모두들 좋아한다"고 말한다. 세종의 음식은 시골 밥상처럼 한꺼번에 모든 음식을 다 차린다. 물론 금방 끓여서 나오는 된장찌개 등은 식사를 시작한 후 나온다. 세종의 밥상에 올리는 나물과 채소는 모두 손 대표가 직접 농사짓는 경산 압량의 농장에서 키운 것이다.
오늘도 삶은 옥수수가 첫선을 보인다. 손 대표는 "옥수수는 아직 조금 이른 철이지만, 계절을 느껴 보라고 밥상에 올렸다"고 설명한다. 역시 시인다운 감각이다. 본격적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삶은 옥수수로 입맛을 다신다. 곧이어 음식상이 차려진다. 그릇과 수저는 방짜유기 그릇이다. 고풍스럽다. 반찬은 숭어 무침회, 삶은 오징어, 고등어찜, 명태찜, 갈비찜, 시래기 된장찌개 등 한결같이 소박하고 깔끔하다.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메뉴는 거의 없다. "모든 음식은 최소한의 가공으로 본래의 맛을 살려야 한다"는 손 대표의 원칙 때문이다.
밥상엔 늘 매실 장아찌가 빠지지 않는다. 손 대표가 직접 농사를 지은 매실이다. 본인도 "매실 할머니라고 불러 달라"고 할 정도로 매실농사에 애착이 깊다.
김창욱 팀장은 "모든 요리는 소박하고 담백한 맛"이라며 "집에서 먹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말한다. 김미란(24) 연구원도 "한식은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며 김 팀장의 말에 동의한다.
김정훈(35) 선임연구원은 음식 마니아다. "이 집 음식은 화려함보다 주인의 정성과 진실한 맛이 배어 있다"며 전문가 수준의 음식 평가를 한다. 의성 출신인 이동락(36) 과장은 "고향에서 먹던 토속적인 맛이라 입에 딱 맞다"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맛있게 양념된 한우 갈비 한 점을 맛본다. 입에 넣으니 고기가 연하다. 그 감미롭고 구수한 맛에 반해 자꾸만 손길이 간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시래기 찌개가 등장했다. 큰 그릇에 풍성하게 담겨 나온 시래기 찌개는 문경에서 재배한 조선무 줄기다. 토속적인 그 깊은맛이 일품이다.
세종은 이제 서서히 대물림할 채비를 하고 있다. 요즘은 며느리 이미례(41) 씨가 거들고 있다. 이 씨는 "한식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한다. 맛과 음식만 놓고 본다면 더 저렴하고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한정식집은 많다. 하지만, 주인의 정성과 진실한 참살이 음식을 즐기고 싶다면 세종이 제격이다. 음식상은 무궁화(1인당) 2만5천원, 전통한정식 3만5천원, 세종한정식은 4만5천원이다. 053)253-0118.
##추천 메뉴-시래기 찌개
시래기 음식을 보면 늘 고향 생각이 난다. 한여름 입맛이 떨어질 때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는 시래깃국 한 그릇이면 입맛을 되찾게 된다. 세종 한정식에는 연중 시래기 찌개가 떨어지지 않는다. 정통 한정식집답다. 어떤 단골손님은 "시래기 먹고 싶어 세종에 간다"고 할 정도다. 된장을 듬뿍 풀어서 만든 시래기 된장국도 좋고, 구수한 찌개도 좋다. 패스트푸드가 판치는 요즘, 시래기는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한우 사태를 푹 고아서 맛국물을 만들어 더욱 깊은 맛을 낸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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