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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수필 / 시

수필

♥소중한 내 친구야

아침 일찍 계란부침, 멸치조림, 오징어무침 등등. 학창시절의 도시락 반찬을 떠올리며 분주히 도시락을 사본다.

여고시절. 나름대로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그땐 꿈과 웃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주검이라는 단어란 우리에겐 결코 해당되지 않는 생소한 단어라고 생각하면서.

내 나이 53세, 그런데 폐암 말기로 6개월을 선고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여고 친구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는 내 눈에 자꾸 핑그르르 도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친구 안부가 궁금하여 전화했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 "이제 난 얼마 못 산다". 거짓말이길, 장난이길…. 어쩌면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니? 너무나 안쓰러워서 너무나 믿기 힘들어서 여운처럼 메아리치는 친구의 말을 부여잡고 한동안 목 놓아 울고 말았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세월의 흔적은 흰머리와 주름을 주는 것만으로도 야속하기만 한데 이렇게 일찍 죽음도 줄 수 있구나. 믿지 못할 현실에 한동안 해결되지 않는 멍한 시간을 붙잡고 헤매고 또 헤맸었다.

친한 친구들과 요양병원에 방문한 날, 병원 가까운 곳에 등산로를 정해놓고 우린 여고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놓은 것처럼 맛있는 점심과 간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픈 친구도, 함께 간 친구들도 모두 이 시간이 지금 여기서 멈추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으리라. 웃음 뒤에 찾아오는 슬픔을 뒤로하고 친구의 배웅을 받으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빌고 또 빌었다.

소중한 내 친구야, 결혼이란 굴레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들의 시간들을, 꼭 병마와 이겨 다시 한 번 여고시절보다 더 멋진 우리만의 세계를 한 번 더 펼쳐 보자고.

※친구는 지금 청도에 있는 윤성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입니다. 저의 메아리가 친구에게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보경(대구 수성구 시지동)

♥빗속을 둘이서

장대비 내리던 주말, 제철 음식인 감자를 분을 잘 내어 한 소쿠리 삶아 놓고, 장맛비가 운치 있어 보이는 까닭은 창 안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차 한 잔과 음악이 있으면 좋은 것 같아 라디오를 켜니 오승근의 '빗속을 둘이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추억을 사정없이 끌어들이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숨 쉬는 것도 방해가 될 만큼 온몸이 짜릿한 순간이다. 커피를 타고 있던 아내의 손을 이끌고 집을 나선다.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길을 나서 분위기 좋은 찻집을 찾아 서성거린다. 얼마만의 데이트인가? 황토물이 콸콸 내려가는 팔거천을 지나 운전면허시험장 뒷길을 따라 빗속을 둘이서 걷는다. 빗소리는 아내의 고운 음성을 꿀꺽 삼켜 버렸고, 물소리는 내 귀를 먹게 했다. 찻집으로 간다는 것이 운암지에 도달하게 되었고 못 둑에 올라서자 빗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악 같다. 시샘이라도 하듯 우르르 쾅쾅, 드럼과 심벌즈의 불협화음 소리 같다.

"이런 날은 밖에 오지 말아야 하는데…"

"왜요?"

"내가 당신한테 지은 죄가 많잖아?"

"내가 다 용서했기 때문에 괜찮아."

'용서'란 말은 무수한 언어의 함축이다.

아무도 없는 운암지 수변공원을 돌며 결코 바랄 수 없는 '용서'란 말에 비에 젖은 옷처럼 행복에 푹 젖었다. 잠시 한눈 돌린 철없던 시절, 엄동설한의 그 두꺼운 얼음장에 금이 가고 강물은 죽은 듯 흐르지 않고, 봄이 되어도 그 얼음 녹지 않더니만…. 빗속을 둘이서 걸으며 '용서'했단다.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성인 것 같았다. 장맛비가 더욱 운치 있어 보이는 까닭은 빗속을 둘이서 걸었기 때문이리라.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다 내 탓인걸

얼마 전부터

책상 위에 작은 개미가 기어다닙니다.

어디서 나올까?

일주일도 더 살폈습니다.

오늘 찾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는 커피

쌓아놓은 종이컵 커피의 설탕이

그들을 불렀다는 걸

난 그 컵을 버릴 수 없습니다.

내 게으름이 그들을 불렀기에

발발발 그 걸음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코를 실룩거리며

"여기다"

소리 질렀을 그들 생각하면

종이컵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또 그들의 가족을

보는 족족 죽인 죄를 반성하며

오늘은 몇 방울 더 남겼습니다.

안영선(대구 동구 신암동)

♥우리 엄마 마라톤 하시다

갑자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주 갑자기 향한 곳

대문은 굳게 닫혀 인기척도 없었다.

어디 가셨지?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 보니

계단 아래 좁은 공간에 우리 엄마 흔적이

방금 자리를 떠났다는 걸 말해준다.

못 만날 것 같았던 예감을 뒤집는 희망

싱그러운 이파리 사이 길로

두리번두리번 보물 찾듯이 찾는데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는 거리

휙 지나가는 노인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휘어진 허리는 유모차에 의지하고

집채만 한 까만 봉지는 유모차에 실려 말없이

노인의 페달 속도에 따라 끌려갈 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

우리 엄마 모습 같기도 한데

아주 잠깐 시야 초점을 맞추는 동안

오솔길로 사라져버린다.

노인이 가는 방향으로 뛰었다.

휙휙 지나가는 뒷모습

거리가 근접할수록 우리 엄마다.

뛰어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

아마도 시속 100키로는 넘는 것 같다

내 힘겨운 사투의 시간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할매~요.

휙 돌아보는 노인은 "누구신교"

당신 딸이시데이

목소리를 듣고 알아본 엄만 비 오는 데 집에 가 있으라고 소리친다.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빠르데요

마주한 엄마 얼굴은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얼른 캔 한 통을 따 드리고

우리 집 두 녀석 어릴 때 밀어보고 처음으로 밀어보는 유모차

생각처럼 잘 굴러가지 않아 시위를 했다.

지켜보던 엄마는 서투른 내 행동거지에

음료 한 통을 다 마시지 못하고 건네준다.

배 속에는 꼬르륵 소리를 낼 지경이지만

방금 점심을 먹어 배부르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단골집 자원센터

아주머니께서는 그러신다.

"오늘은 딸하고 같이 왔네."

옆에 서 있어도 힘이 나고 행복한가 보다

우리 엄마 얼굴엔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유모차에 싣고 온 봉지를 저울에 올리자

1000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아 손에 꼭 쥐고

돌아오는 길, 노란 우산 속 우리 엄마의 웃음이 여유가 있었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지난주 장원=변창훈(경남 거창군 거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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