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우리 안의 아프리카

아프리카 챠드에서 선교사로 있는 친구가 한국을 다니러 왔었다. 그가 한국일정을 마치고 돌아갈 때 공항까지 배웅나갔다. 공항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고, 각국의 주요 도시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한참을 보고 있던 친구가 "왜 아프리카 시간은 하나도 없니?"라고 물었다. 짧지 않았던 한국 체류기간 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소식마저 들을 수 없었던 그는 이렇게 한국이 아프리카에 대해 닫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7일 한밤중에 평창이 불려졌다. 평창은 대한민국의 산속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한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눈이라고는 오지 않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날아온 낭보였다. 평창이 선정된 일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여 얻어낸 인위적인 결과였다. 이런 인위적인 노력을 들여야 할 일이 또 있다. 평창올림픽은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명분을 앞세워 세계를 설득했다. 아시아에서 동계스포츠의 활성화라는 지평, 분단국에서 평화의 지평을 연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문화적으로 소원한 지역끼리 연결하는 가교가 되는 것도 평창이 할 일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은 특히 한국사회가 아프리카를 향해 문을 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슬픈 대륙, 검은 대륙으로만 기억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프리카는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아프리카는 그 더운 날씨만큼이나 큰 정열로 모든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융합해 낸 용광로이다. 아프리카 본토 문화 위에 아랍, 유럽, 그리고 아시아 문화가 함께 어울려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는 아시아 다음으로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이다. 그 땅은 남북한의 143배나 되고, 54개의 국가가 있으며, 10억 명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는 현생 인류의 발상지이다.

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저질러졌던 노예무역은 인류 전체가 이 대륙에 갚아야 할 역사적 부채를 남겨 주었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19세기까지 약 1천만 명을 노예로 삼기 위해 약탈해 갔다. 이후는 식민주의의 '아프리카 쟁탈전'으로 이어졌다. 아프리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외세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은 험난했다. 착취와 식민지 지배를 오래도록 강요당했던 그곳에는 질병과 가난, 문맹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는 불안하여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70번 이상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13명의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이제 새로 일어서고 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 챠드로 선교하러 간 친구는 요즈음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점점 자신들의 고유언어를 쓰기 때문에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고민했다. 아프리카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는 유럽어 외에 줄잡아 400개 이상이 된다. 그 다양함이 일어서고 있다.

이집트에서 시민혁명이 시작되던 날 나는 운 좋게도 그곳 카이로에 있었다. 헌법재판소 앞에 100여 명 되는 시위대가 종이에 '무바라크 물러가라'고 쓴 판자를 한 개 들고 있었다. 시위만 하면 온갖 피켓이 등장하는데 익숙해진 나는, 그들의 조용한 외침이 놀라웠고, 성공할 수 있을까를 의심했다. 귀국 후 매체에 보이는 그들의 시위는 역시 맨손을 하늘에 치켜들고 행하는 외침이었다. 그냥 맨손뿐이어서 잡아주어야 할 것 같았던 손들이었다. 일어서려 할 때가 진정으로 친구가 필요한 순간일지 모른다. 더구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한국을 도우러 왔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전공을 하는 교수가 있어야 그 분야의 대학원생을 미래의 연구자로 받는다. 그러므로 학계에서 아프리카 지평을 열기는 더 더딜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라면 학계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올림픽위원회가 열리던 기간 동안 김연아 선수가 아프리카 스케이터들에게 스케이트 타는 법을 코치하던 일은 몇 장의 서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종합적인 외교였다. 우리 안에 있는 흑인에 대한 편견,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리는 시작이었다.

우리 공항에 케이프타운, 카이로, 카사블랑카, 라고스 등 아프리카 도시들의 시간이 나타날 수 있기 바란다. 그 먼데서 온 아프리카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따뜻한 고향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가끔은 뉴스에 아프리카 소식도 전해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 풍부해지는 길이다.

김정숙(영남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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