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퇴장!"(심판의 레드카드가 코트에 정적을 흐르게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10년 4월 22일 오후 3시 30분으로 돌아간다. 장소는 상주여고의 홈코트인 상주 실내체육관. 2010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 준결승전이 펼쳐지고 있다. 상주여고와 옥천상고의 준결승전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상주여고가 약간 수세에 몰려 있다. 그에 더해 심판진들은 이상하게도 옥천상고 선수들의 반칙은 잘 안 보고, 상주여고 선수들의 반칙은 크게 봤다. 경기는 계속 상주여고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답답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상주여고 임인수 코치가 감정이 폭발해 2쿼터 중반쯤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심판의 '권위'에 도전한 결과로 돌아온 것은 레드카드. 코트 밖으로 쓸쓸히 퇴장해(다음 경기인 결승전까지 못 나옴) 코트 밖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감독에게 연락을 취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선수들은 더 똘똘 뭉쳤다. 코치가 사라진 덕아웃을 보면서 상주여고 선수들은 더 민첩하게 움직였고, 공수에서 더 강하게 상대방을 압박했다. 결과는 상주여고의 '4쿼터 역전드라마'였다. 이 기세를 몰아 코치없이 치러진 결승전에서도 극적으로 승리하며, 이 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 예상을 뒤집은 것이다.
실제 청주여고와의 결승전의 객관적인 전력 분석에서 4대6 정도로 상주여고가 열세였다고 한다.
이는 마치 2010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쿠바와의 야구 결승전 당시 포수 강민호가 볼판정 시비로 심판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뒤, 선수들이 똘똘 뭉쳐 쿠바를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을 연상케 할 정도로 짜릿한 반전을 가져온 것이다. 이것이 상주여고의 지난해 감동의 우승 스토리였다. 코트의 여전사들을 만나러 12일 억수같은 비를 뚫고 상주로 갔다.
◆최단신 여고 농구부, 전국 제패
먼저 전국 최단신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상주여고 농구부 주역들을 소개한다. 3학년인 류영선(174㎝'센터)'김은지(160㎝'가드), 2학년 김선미(172㎝'가드)'최유정(167㎝'가드), 1학년 김시온(173㎝'가드)'조선연(183㎝'센터)'홍차영(163㎝'가드)'조유진(165㎝'가드) 선수 등 8명이다. 평균키는 170㎝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전국 여고 팀 중 최단신이다. 키만 놓고 보면 중학교 팀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농구부는 여고 최강이다.
상주여고 팀 컬러는 '체력과 스피드'다. 상대팀에 비해 작은 키의 단점을 극복하기서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더 빠르게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 팀은 장거리 슛을 잘 쏜다. 5명 주전선수 전원이 곳곳에서 뿜어내는 3점 슛은 상대 선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한 경기 전체 득점 중 60%를 3점 슛으로 넣은 적도 있다. 1쿼터에만 5, 6개의 3점 슛이 폭발할 때도 자주 있다. 이에 더해 상대 팀의 공의 가로치는 '스틸'도 다른 팀을 압도한다. 이는 바로 체력과 스피드가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감독과 코치가 원하는 방향이었고, 선수들은 똘똘 뭉쳐 잘 따라줬다.
더 특이한 점은 1학년 선수들의 기량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탓에 주장인 류영선 선수를 비롯해 김은지'김선미'최유정'김시온 선수가 주로 스타팅 멤버로 뛰고 있다. 이들은 거의 모든 경기를 교체 없이 소화하기 때문에 주전 1명이라도 5반칙 퇴장이나 부상을 당하면 팀은 곧바로 위기다. 창단 초창기 선수가 5, 6명밖에 없을 때는 4반칙 선수는 상대팀 선수를 먼저 피해가는 전략도 구사한 적이 있다고 하니 참 웃지 못할 비극(?)이었다.
2006년 창단해서 이뤄낸 성적은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다. 2008년 제38회 추계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제89회 전국체육대회 3위, 2010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 우승, 제91회 전국체육대회 준우승, 올해 열린 제6회 고려대총장배 전국고교남녀농구대회 준우승 등이다. 오는 10월 전국체전 우승은 가까운 목표다.
◆꿈많은 여고생들, 눈물과 땀에 젖다
올해 우리은행 농구팀에 입단, 첫 프로행 티켓을 거머쥔 상주여고가 낳은 스타 박근영 선수(157㎝'프로 최단신)가 코트에서 후배들과 함께 있었다. 박 선수는 앞서 언급한 지난해 연맹회장기대회 옥천상고와의 준결승에서 38점, 청주여고와의 결승에서 3점 슛 6개를 포함해 무려 39점을 쏟아부은 '득점 기계'(지난해 득점랭킹 1위)다.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겼고, '롤 모델'이 될 훌륭한 선배이기도 하다.
기자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박 선수에게 몸 좀 풀고, 3점 슛 라인에서 10개의 농구공을 던져보라고 했다. 후배들이 보는 가운데 씩씩하게 도전한 박 선수는 10개 중 8개를 성공시켰다. 막 던지는 것 같아도 쏙쏙 들어갈 때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프로에 입단하려면 이 정도쯤은 돼야 했다. 박 선수는 상주여고 시절을 떠올리며 하루 3점 슛만 600∼700개를 던질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을 했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의 별명도 재미있다. 조선연 선수는 홀쭉해지라고 '쭈기', 홍차영 선수는 이름 때문에 '똥차', 조유진 선수는 '앞니'등으로 재밌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2, 3학년 선수들은 별명이 있는 데도 안 알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들은 항상 함께 한다. 분위기가 좋을 때는 계곡, 바다 등으로 소풍을 떠나기도 한다.
꿈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이지만 농구를 하면서 매일 매일 훈련을 견뎌내며 땀에 젖어 생활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농구공이 좋고, 농구코트가 좋다.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실력이 향상되고, 그에 걸맞은 운동 성적표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감독과 코치의 따뜻하고 열정적인 지도는 선수들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상주여고 농구부는 학교뿐 아니라 상주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때문에 교장의 각별한 관심과 함께 지역 각계의 격려가 쇄도하고 있다. 상주여고 손위호 교장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제가 부임한 이후로 농구부가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둬줘 고맙고, 학교로서는 자랑스런 농구부"라고 웃었다.
하지만 여자 고교 농구부가 처해진 어려운 현실은 악어가 사는 늪과 같다. 언제 선수생활이 끝날지 모르며, 자신도 모르게 도태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학 팀도 몇 군데 되지 않는데다 프로팀 입단 또한 녹록지 않다.
상주여고는 이런 현실에서 예외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2, 3호 프로팀 입단선수가 등장할 것으로 보이며, 더 좋은 성적으로 지역의 최고 명문 여고 농구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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