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배운 한(恨)을 풀고자 시골 할머니 4명이 '사고'(?)를 쳤다. 늘그막에 초등학교 1학년 새내기로 입학해 손주뻘 되는 아이들과 공부를 시작한 것. 배움의 기쁨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늦깎이 초등학생들의 가슴 설레는 학교생활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봤다.
12일 오전 영천시 고경면 고경초등학교 1학년1반 2교시 국어 받아쓰기 시험. 할머니와 아이들이 긴장한 채 선생님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1번 문제 잘 듣고 적으세요. '커피 먹고 코피가 터져서' 다음 2번 문제". 정화자(70'고경면 전사1리) 할머니가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피'자가 고스톱 칠 때 나오는 쌍피의 '피'자가 맞지요?" 담임인 홍아름(29) 교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13일 오전 1교시 수학시간. 숫자를 잘 모르는 박방규(72'고경면 청정1리) 할머니가 이십구(29) 다음 숫자를 쓰지 못하자 여덟 살 짝꿍 강은주 어린이가 수호천사로 나섰다. "할머니, 이십구(29) 다음엔 뭐예요?" 은주가 손가락을 내보인다. "27, 28, 29, 삼십(30)이잖아요. 아이구 답답해!" 은주 뿐 아니라 모든 반 친구들이 할머니를 이해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신입생 중 최고령자인 박 할머니는 "집에 배달되는 신문과 각종 고지서를 지금까지 아들이 읽어줘야만 했다"며 "지금은 더듬더듬 읽는 수준이지만 글 읽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정갑수(67'고경면 동도리) 할머니는 "어렸을 때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그만뒀다"며 "글을 읽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막내인 이명자(56'고경면 전사1리) 씨는 초등학교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를 그만뒀는데, 이제 열심히 공부해"초등학교 졸업장을 받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홍아름 교사는 "입학식 때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했지만 어르신들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김영희 교장은 "배움의 열정에는 나이가 없는 것 같다. 할머니들이 졸업하는 그날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글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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