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제목만으로 충분한 책들이 있다. 지난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러하다. 연이어 나온 그의 '도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냉담을 떠올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하버드대라 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도덕에는 관심이 없고 '그들'은 과연 '정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만 유독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1년 가야 인문 서적 1권을 읽지 않는 일반 독자들이 읽기엔 지루하고 간단치 않은 내용인데다 눈이 번쩍 뜨이는 별스런 얘기도 없는 게 사실이고 보면 온 국민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에 격하게 반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분노하라'는 책 제목이 여기저기서 인용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뒤를 잇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선정적인 문구인 때문인지 30여 쪽 남짓의 소책자임에도 그다지 반응이 신통치 않다. 94세의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지난해 프랑스 전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에셀은 커져가는 빈부 격차와 인권 문제를 얘기한다. 그리고 물론 이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는 주식만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13조 원이 생기는데 누구는 돈이 땀에 젖도록 일해도 최저임금으로 고작 30원을 올려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결국 260원이 올랐다) 버스비가 한 번에 150원이나 오르는 마당에….
이청준의 '살아있는 늪'에는 낯익은 분노와 인내의 풍경이 펼쳐진다. 새벽 4시, 빗길에 고장 난 시골버스 안에서 차표를 물러달라는 요구조차 묵살당한 채 되레 운전사의 호통에 고분고분해진 사람들. 1시간 만에 나타난 뒤차는 바퀴 빠진 삼륜차에 길이 막히고 만다. 갈 길 바쁜 답답한 승객들이 비를 맞고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삼륜차를 밀어보지만 요지부동이다. 6시에 출발한 버스마저 뒤에 와 서고 그 와중에 갯엿 장수 아낙들은 그 자리에서 엿판을 벌인다. 차 속은 눅눅한 습기와 비릿한 살 냄새로도 모자라 사방에서 엿 이기는 소리까지 찐득찐득하다. 주인공은 천연스레 엿들을 먹고 있는 그들의 여유와 참을성이 흙탕물 속에서 삼륜차를 끌어내려 할 때의 일사불란하고도 저돌적인 열의보다 더 끔찍스럽게 느껴진다. 견딜 수 없는 수모감에 휩싸여 그는 '사람 몰골을 하고 태어났으면 시늉이라도 좀 사람값을 해보려 해야지, 그래 이게 어디 사람의 꼴로 당할 일'이냐며 버럭 분노를 터뜨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람값이라, 사람값. 그게 참 좋은 말이제…'라는 사방의 이죽거림과 함께 엿장수 아낙이 마치 어린앨 어르듯 그에게 조근조근 일러온다. '…하기야 이런 일 많이 안 당해 본 사람은 이런 때 성질이 안 끓어오를 수도 없을 텐께요. 첨엔 우리도 다 그랬답니다. 하지만 하루 한 번씩 이런 길을 댕기면서 이 꼴 저 꼴 참아 넘기고 사는 사람도 있다요. 여비만 좀 모자라도 차를 내려라 마라, 삐슥한 불평 한마디만 해도 노선을 죽인다 살린다…. 차를 아주 안 타고 살라먼 몰라도 그런 일 저런 일에 어떻게 다 아는 척을 하고 살겄소….'
요컨대 분노는 아무나 터뜨릴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억울하면 너도 출세해'라는 말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분노하기 전에 먼저 '분발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분발하면 분노할 일이 적어지고 분노는 그렇게 자격이 갖추어진 사람에게 주어질 때 고귀한 것이며, 분발 없는 분노란 그저 불온에 지나지 않는 시정잡배의 것이라 교육받았다.
'먼저 분발하라'는 말에 찍소리도 못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 같다. 그렇다고 '분노하라'를 쥐어 들 정도는 아직 아니다. 프랑스는 몰라도 우리 젊은이들은 아직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지난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손에 쥔 것, 그것이야말로 부정의한 사회현실에 대한 우리식의 '완곡한 분노하라'였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분발하라'에 웅크리고만 있다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당당하게 집어 드는 데만도 수십 년이 걸렸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하라'를 쥐어 들기보다는 그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 그래서 '분노'가 아니라 그 답에서 에셀이 말하는 '기쁨'을 찾고 싶은 것이다.
김계희(변호사)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