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대용량 묶음 단위 판매의 허실(虛實)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대용량 묶음 단위 물건을 일반 품목보다 오히려 비싼 가격표를 붙여놓고 소비자를 현혹한다는 내용이 주목되었다.

대부분 소비자는 생필품의 구입이 편리하고 물건값이 저렴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대형마트를 자주 이용하는데, 그곳에서 대용량 또는 묶음 단위의 제품을 구매하면 상대적으로 용량이 적거나 낱개 포장보다 가격이 훨씬 더 쌀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다. 특히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주부들은 그나마 물건의 정상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값의 경중을 꼼꼼히 따져보는 데 익숙하겠지만, 평소 일상용품 구매를 자주 하지 않는 남성 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라면 대개 묶음 판매가 무조건 단일 품목보다 저렴할 것이라는 믿음이 컸을 것이다. 이처럼 낱개 제품보다 대용량 또는 묶음 단위의 판매에 대해 신뢰도가 높았던 소비자라면, 금번 뉴스를 보고 평소 자신이 어떤 물건을 살 때 가격을 제대로 따져보고 구매했는지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단지 대용량 묶음 단위 판매로 하여 일방적으로 소비자를 현혹해 이윤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낱개 포장으로 살 때보다 대용량 또는 묶음으로 구매할 때에 물론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묶음 단위의 판매는 일종의 '번들(Bundle)효과' 심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여러 개의 제품을 묶어 하나의 꾸러미(Package)로 만들어진 전자 제품 등의 판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컴퓨터를 구입할 때, 기계장치인 하드웨어를 사면 이와 함께 제공되는 소프트웨어(이를 번들 소프트웨어라고 함)는 부수적으로 딸려온다. 그런데 번들 소프트웨어도 원래 프로그램 개발자에 의해 개별 상품화된 것으로서 독립적인 판매 대상이다. 이때 판매량을 늘리고 시장을 확보하는 한편 재고를 처리할 목적으로 하드웨어 업체와의 계약에 의해 하나의 꾸러미로 묶어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는 컴퓨터 기계장치를 작동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프로그램인 MS 윈도우는 제값을 치르지 않고 '공짜'로 구입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를테면 묶음 단위의 실리를 따져보게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어떤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에게 아예 대량 묶음 판매 전략을 내세워 놓고, 일정 기간 동안 입회비를 받는 대신에 물건값을 다른 할인점보다 싸게 판매하는 곳도 있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입하기도 전에 입회비까지 미리 지불하며 이러한 대형마트를 찾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들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평소 소비자들에 대한 신뢰가 크게 작용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다만 이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은, 몸에 좋은 약도 과용하면 안되듯이 아무리 싸게 파는 물건일지라도 구매하는 사람들 역시 내가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소비문화가 필요할 것이다. 눈앞에 쌓여 있는 많은 물건이 당장 나에게 불필요한데 견물생심으로 무조건 싸다고 구입하는 것은 과소비가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소비자의 구매 심리와 눈을 현혹하여 교묘하게 질량의 저울질을 조장하는 대형마트의 상술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득 대형마트의 대용량 묶음 단위 판매와 관련된 뉴스를 보노라니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가 떠오른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송나라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여러 원숭이를 사육하면서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원숭이들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일렀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화를 내며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도저히 배가 고파 못 견딘다고 항의했다.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그들이 좋아했다는 내용인데, 요즘 우리 대중 사회에서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3과 4를 구분 못하는 우매한 원숭이가 아니라, 아주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을 대형마트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김국현(올브랜 아울렛 대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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