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 '베스트 오브 베스트 드라이버' 택시기사 표성만 씨

40년 3개월 무사고 운전…"돈보다 안전 빌어준 아내 덕분"

"운전은 곡예자랑이 아니잖아요. 맑은 정신과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야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영업용 차량 중 최장 무사고 운전기사인 표성만(67) 씨. 그는 운전대를 잡은 지 40년 3개월간 한 건의 사고도 내지 않아 최근 경찰청장이 시상하는'30년 이상 무사고 운전장' 메달을 받았다.

그는 무사고 운전 시상을 처음 시행한 1981년'10년 무사고' 1986년'15년 무사고'1991년'20년 무사고'1997년'25년 무사고'와 이번의'30년 이상 무사고 운전'을 모두 수상해 모범 운전자 중의 모범 운전자로 통한다.

"아내 때문에 무사고 운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내는 결혼 44년 동안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을 만큼 내조를 잘해주었거든요. 항상 출근길엔 '돈벌이보다 안전한 운전을 하라'는 인사를 하죠."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법규준수나 올바른 운전습관, 방어운전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안전운전의 비결은 아주 소박하다.

"요즘 운전자들은 난폭운전이 너무 심해요. 이런 운전자들 때문에 아찔할 때가 많아요. 또 운전 중 휴대전화 통화나 지나친 차유리 선팅도 사고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의 운전인생은 군대에서 비롯됐다. 군에 입대하면서 운전 병과를 받았고, 1965년 월남전 첫 파병부대인 건설지원단인 육군 비둘기부대에서 군용트럭을 1년간 운전했던 것.

"월남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 사이공 인근에 막사와 방공호 등 군주둔 시설을 설치하던 중 심야에 월맹군의 기습을 받았어요. 파병 한국 군인에 대한 첫 피습이었고 군인들도 많이 숨졌어요. 당시 나도 죽는가 싶었는데 운이 좋았죠."

그는 귀국해서도 1970년 엽연초 전문운송회사에 입사해 2년간 트럭운전을 했다. 당시 GMC트럭을 몰고 안동지역에서 재배하는 엽연초를 싣고 대전 신탄진까지 운송했다.

"시내버스 핸들도 10년 잡았어요. 검단동에서 무태를 다니는 89번 버스였어요. 안내양이 2명 있는 버스에는 콩나물 시루처럼 손님이 꽉 찼지만 안전운행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당시 대구 북구 무태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밑에 있는 굴다리의 도로폭이 너무 좁아 백밀러를 접어야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코스였다. 다른 운전자들은 굴다리를 통과하면서 사고가 잦았지만 그는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았을 정도로 운전기술이 뛰어났다.

"처음 택시운전대를 잡은 1982년에는 가스'휘발유 겸용차량인 포니Ⅱ택시를 운전했죠. 당시 택시의 벌이는 하루 3만~ 4만원가량이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큰 수입이어서 신이 났어요. 그래서 아침부터 자정까지 하루 400㎞ 이상 뛰었고 명절때는 심야까지 운전하기 일쑤였어요."

그는 1980년대에는 택시가 1천600여 대에 불과해 기사들끼리 얼굴을 모두 알 정도였다고 했다. 면허를 먼저 받은 선배차가 앞에 가면 후배들은 절대 추월하지 않는 미덕도 있었다는 것. 하지만 요즘은 택시가 크게 늘고 먹고살기 바빠서인지 선'후배의 정이 사라진 데 대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운전인생으로 아들 둘을 대학에 보내고 결혼까지 시킨 그는 요즘 부부 용돈만 벌 요량으로 쉬엄쉬엄 운전한다고 했다. 오후 6시면 집에 돌아오고 경북도청 뒤 연암공원에 올라 매일 2시간씩 운동하며 건강도 지킨다.

현재 대구시 북부모범운전자회 고문을 맡고 있는 그는 교통 취약지구 교통정리 보조역할로 봉사하고 있고, 개인택시기사 모임인 운봉산악회를 조직해 17년간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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