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거운 책 읽기] 철학 vs 철학/ 강신주 /그린비

철학 읽는 즐거움

분주한 일상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가끔 철학적 의문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집착과 고통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국가는 꼭 필요한 것일까? 역사를 관통하는 법칙이 있는 것일까? 등등. 이제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쓰인 철학책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대중적인 철학책들을 저술하는 우리시대 철학자 중 한 명인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에는 그야말로 동'서양철학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저자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교하고, 사유재산의 정당성에 대해 로크와 루소를, 집착과 고통의 원인에 대해 나가르주나와 바수반두를,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에 대해 장재와 주희의 철학을 비교한다.

진정한 사랑에 대해 공자와 묵자의 사상을 비교한 다음 내용을 보자. 저자는 공자가 주장했던 사랑이 보편적인 것이었는지를 물으면서, 공자가 강조한 '인'(仁)개념이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고 이해되어 온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자의 인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해라는 것으로, 공자는 사람을 가리키는 인(人)과 백성을 가리키는 민(民)을 구분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마땅히 사랑받아야만 하는 존재라면, '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부림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반면, 묵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자며 '겸애'를 강조한다. 묵자가 강조한 겸애는 남의 집을 내 집처럼, 남의 아버지를 내 아버지처럼, 남의 국가를 내 국가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간단한 원리로 정의될 수 있다. 그래서 묵자의 사랑은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랑과 비교되기도 했다. 묵자의 사랑은 정서적 유대감을 넘어 물질적인 상호부조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묵자는 지배계급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공자의 인(仁) 개념을 겸애로 확장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정서적 유대의 원칙으로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저자는 묵자마저도 보편적 사랑이나 이익의 공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위계적 정치제도 그 자체에 대해선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전체주의의 발생 원인에 대한 아도르노와 아렌트의 비교도 흥미롭다. 존재의 철학자로 알려진 하이데거가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나치당에 기부금을 바친 인물이었다면, 아도르노는 서양철학이 그토록 신봉해온 이성의 논리 자체가 전체주의를 낳았다고 보았다. 한편 아렌트는 인간의 '무사유'로 인해 전체주의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1961년 12월,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유태인 학살 과정의 총책임자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잔혹한 악마가 아니라, 이웃의 빵집 아저씨처럼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렌트의 눈에 아이히만이란 인물은 히틀러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려고 했던 근면한 관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출세를 지향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근면을 생활의 준칙으로 삼은 인물이었을 뿐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철저한 무사유,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음에서 찾았다.

하지만 저자는 전체주의를 막기 위한 아도르노나 아렌트의 노력이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다고 비판한다. "세계화 되어가는 자본의 운동 속에서 사회는 갈수록 분업화, 전문화 그리고 체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체계 속에 포획된 인간은 그만큼 왜소해지기 마련이다. 전체주의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 주체의 시선이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것만으로는 매우 불충분하다. 전체주의적 비극을 조장하는 사회구조 혹은 체계를 새롭게 변형시키려는 작업도 동시에 수반되어야만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900쪽가량의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책 한 권에서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두루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철학하는 백성,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을 떠올리며, 휴가철 철학하는 기쁨을 누려보기를 권한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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