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수필/시

♥기다림 (수필)

대학 졸업을, 취업을, 군에 간 친구를 기다리던 여심이 세월이 지나면 또 다른 기다림으로 설렌다. 아기 갖기를,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를…. 인생은 수 없는 기다림의 연속인가 보다.

하지만 가장 외로운 기다림은 무엇일까? 그건 확신할 수 없는 기다림일 것이다. 보다 더 외로운 기다림은 외로움을 떨쳐 버릴 기다림이 아닐까? 비록 건강한 삶일지라도 나이가 들어 주위 친구들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 외로움은 더 할 것이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이 든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이사를 하셨다. 친구는 물론 지인이 없어 조금 떨어진 아파트 노인정에 모셔다 드린 적이 있다. 그러나 주택에서 생활하시는 어머니는 아파트 주민 할머니와의 이질감을 견디지 못하겠던지 아예 집 밖을 나가시지 않고 TV를 벗삼아 집에만 계시는 것이다.

초복 날, 시원한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드리고 냉면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어머니의 수다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웃의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고, 어떤 날은 이른 아침부터 감자, 양파를 사라는 확성기 소리에 잠을 깼고, TV를 본 드라마, 뉴스 등 일어난 일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얼마나 말씀이 하고 싶었으면, 홀로 되신 어르신의 이 심각한 외로움을 어찌 달래 드려야 할지 마음이 짠했다. 초복에 다녀간 이후, 달력을 보시고 빨간 날만 기다리시던 어머니께서는 숫자 밑에 깨알같이 적힌 무슨 날, 기념일에도 으레 우리가 올 것이라는 기다림으로 보내시는 것 같다.

중복(中伏)에는 월남전에 참전하신 님을 기다리셨던 어머니가 궁금해 하시는 '월남쌈'을 사 드려야겠다.

김원희(대구 북구 태전동)

♥진정한 여름(수필)

"으~ 덥다, 더워."

장마가 끝난 여름은 화산의 열기를 뿜어내듯이 온 도시를 더위 속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입 안에서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너무 덥다. 선풍기 바람도 덥네."

방학이 됐는데도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더위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여름에는 더운 게 당연하죠. 아무리 더워도 좀 참으면 되는데요."

책에서 눈을 잠시 돌린 후 더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하는 말에 남극의 찬바람이 온통 집안을 꽁꽁 얼어버리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에어컨 좀 틀자?"

온몸에는 끈적거리고 칭칭 감기는 땀으로 더 더워지는 기분에 아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에어컨 한 대가 선풍기 삼십대의 전력을 소비하고요. 에어컨을 틀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고요. 우리 집에서 먼저 에어컨을 사용하기보다는 참아야 해요."

아이의 지구 사랑은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우리 집 에어컨은 모양뿐이다. 이 같은 더위에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리저리 선풍기 바람만 바삐 돌아가며 더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아이는 이마와 목덜미에 굵은 땀들이 줄줄 흘려도 전혀 상관을 하지 않는다.

"너무 더워, 이 흐르는 땀 좀 봐라."

아이는 그제야 옆에 있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맑게 웃는다.

"이렇게 땀을 흘리는 것이 진정한 여름의 맛이에요."

"뭐라고?"

"땀이 뚝! 뚝! 흐르면 뭔가 해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져요."

무엇이든 쉽고 간편함을 원하는데, 참아낸 것에 대해 뿌듯해 하는 아이 앞에서 나 자신이 갑자기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기쁨은 땀과 함께 오는 만족함인 것 같다. 지나온 세월 속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땀을 흘리며 참으며 이겨냈는지 부끄럽기만 하다.

이번 여름에는 더위를 참으며 땀의 의미를 생각하는 등 뜻있는 여름을 보내야겠다.

"아들, 지구가 널 좋아할거야!"

김복순(대구 달서구 이곡동)

♥바람꽃(시)

모질다

설풍을 이겨낸 인내가

세월을 밀어가는

바람아

구름아

꽃이라 부르지 않는 너는

한곳에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구름 되고 바람 되어도

욕심 한번 부린 적 있더냐

인생은 잠시

눈물 속에 핀 곱디고운 연꽃처럼

잠시 이슬 되어 사라지는 것

꽃이라 부르지 않아도 좋아

이름 석 자 남기고 갈수 있다면

바람꽃이라도 좋아

윤명학(청송군 청송읍 월막2리)

♥내 가방(시)

그 옛날 어릴 적

어머니가 사 주신

빨간 책가방.

언젠가부터

내 작은 어깨에

항상 붙어 다녔지.

책도 넣고

밥도 넣고

친구야 이야기도 넣고

무지개 꿈도 두 손 담아 넣고

무겁게 무겁게 뛰어 다녔지.

어느덧

세월은 시'공간을 초월해

꺾어진 백년이 되어 버렸지.

책도 없고

밥도 없고

친구야 이야기도 없고

무지개 꿈도...

이제는 골동품 같은

빛바랜 내 가방

가볍게 가볍게

느릿 느릿 걸어 다니지.

신경희 (대구 북구 국우동)

♥이산가족 상봉(시조)

눈물이 절로 난다 예순 해 맺힌 한아

잡은 손 따뜻함에 심장이 멎어진다

오늘이 오늘이소서 한없는 오늘이소서

무정한 뜬구름도 남북을 오가는데

사랑 두고 어이해 별보고 울어야 하나

살려고 넘어 온 서울 손잡으니 고사리 손

서러운 이별 눈물 금강산에 흘려두고

가거라 한강으로 내 사랑 오지랖에

젖은 손 닦게 하여서 못 다한 정 나누자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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