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천하를 제패한 영웅들, 그 비결은 뻔뻔함과 음흉

후흑학/신동준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

오우삼 감독의 영화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은 조조를 바보처럼 꾸미고, 유방을 착하게만 꾸몄지만, 두 사람 모두 음흉함에 있어서는 따를 자가 드물었다. 영화 적벽대전의 한 장면.

'얼굴이 얇아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맑아 의중을 숨기지 못하는 자는 패배한 뒤에 이를 갊이 있으리라.'

청나라가 멸망하고 신중국이 탄생하는 격변기에 등장한 후흑학(厚黑學)은 수천 년 중국 통치술의 정수를 꿰뚫고 있으며, 성공의 원리를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정의한다. 후흑학이란 '면후심흑'(面厚心黑) 즉, 두꺼운 얼굴(面厚)과 시커먼 속마음(心黑)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청나라 말기의 기서를 일컫는다.

후흑학은 한마디로 '철면피가 되라'고 말한다. 책은 영웅호걸이라 불리며 중국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위인들이 하나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들이었음을 일깨우고,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공명을 떨친 왕후장상, 호걸 성현들 중에 후흑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역설한다.

유방은 항우가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그 국 한 사발 나누어 달라'며 이죽거렸고, 초나라 병사에게 쫓길 때 수레가 무거워 달아나기 힘들어지자, 수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제 자식들을 세 번이나 발로 차서 마차에서 밀어냈다. 천하를 얻은 뒤에는 한신과 팽월을 토사구팽했다. 그렇게 음흉하고 뻔뻔스러웠기 때문에 그는 천하를 거머쥐었다. 이에 비해 순진하다고 할 수 있는 항우는 유방과 대결에서 늘 우위에 있었으나 단 한번의 대패로 수많은 부하들이 죽었을 때, '일단 몸을 피한 뒤 다시 기회를 도모하자'는 장수들의 충언을 뿌리치고, '강동의 자식들을 다 죽이고, 내가 강동으로 도망쳐 무슨 염치로 그 부모들을 볼 수 있겠는가'라며 죽음을 택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사마의는 과부와 고아를 가리지 않고 사기를 쳤으며, 음흉함이 조조와 같았다. 제갈량으로부터 건괵(부녀자들이 의관용으로 머리에 쓰는 두건)을 선물로 받는 모욕을 당했을 때도 사자를 환대한 다음 예를 갖추어 환송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삼국지의 영웅 유비 역시 뻔뻔하고 음흉하기로는 하늘을 찔렀다. 그는 자신이 약할 때 죽은 시늉이라도 할 듯 조조에게 머리를 조아렸으나 배신을 꺼리지 않았다.

현대 중국 역사에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경서(經書)을 읽어 도리를 우위에 두었던 장개석은 임기응변에 실패해 뜻을 꺾어야 했고, 줄기차게 사서(史書)를 읽었던 모택동은 천하를 얻었다.

이 책은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유방과 항우, 장량과 한신, 조조와 유비, 손권과 사마의, 장개석과 모택동 등 오월동주시대부터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대륙을 누볐던 영웅호걸의 두꺼운 낯가죽과 음흉함에 대해 숨김없이 드러낸다.

후흑학은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가볍게 여기며, 사과하는 법이 없는 중국인의 국민성을 비난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학문이기도 하다. 품위와 인격을 갖춘 인간의 시선으로는 용납하기 힘들지만, 중국인들이 이처럼 천박한 성품을 갖게 된 데는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었다. 말하자면 역사의 굴곡을 헤쳐나오기 위해 체득한 생존술이며, 오늘날 중국을 G2의 반열에 올린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지은이 신동준은 고전에서 기업경영과 자기계발의 메시지를 찾아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온 사람이다. 승패에 따라 가솔의 운명이 갈리는 제왕의 처세는 일신의 안위만을 바라는 졸부의 처세와는 다를 것이다. 지은이는 "후흑학의 요체를 압축해 소개하고, 21세기에 맞게 재정비해, 글로벌 전쟁터에 뛰어든 기업의 총수, 간부를 비롯해 세상을 상대로 승부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처세술을 9가지로 정리했다"며 "이기면 모든 것이 미화돼 '절세의 군주'가 되고, 패하면 모든 것이 폄훼돼 '만고의 역적'이 되고 만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대격변의 시대와 맞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356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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