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죽어서 연인을 만난 일본 여자, 가네코 후미코

"조선은 독립해야 합니다. 같은 인간을 신으로 섬기는 천황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1924년 도쿄의 재판정에서 한 일본 여성이 당시로는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발언을 토해냈다. 그녀는 한국인 독립투사와 결혼하고 훗날 조선의 흙이 된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였다. 투철한 사상가였고 사랑에도 치열했다.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9살 때 조선에 건너와 충북 청원군 부용면의 고모집에서 하녀 취급을 받으며 어렵게 컸다.

1922년 도쿄에서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과 운명적으로 만나 '사상의 동지, 사랑의 동거자'가 됐다. 무정부주의 운동을 함께하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이들은 천황 암살모의 혐의로 체포돼 원하는 대로 사형이 선고됐다. "부디 우리를 단두대에 세워달라. 나는 박열과 함께 죽을 것이다." 그녀는 재판정에서 굽히지 않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일왕의 은사장을 박박 찢어버렸다. 1926년 오늘, 우쓰노미아 형무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이었다. 그녀가 잠든 경북 문경의 묘소 옆에는 그렇게 사랑했던 박열 의사의 기념관이 서있다.

박병선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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