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견자(박용하)

누가 자꾸 삶을 뛰어내리는가

누가 자꾸 초읽기 하듯 심장을 뛰어내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네 영혼은?

네 손목은? 네 발목은?

누가 자꾸 지구를 뛰어내리는가

누가 자꾸 햇빛과 달빛을 뛰어내리는가

눈물도 심장에서 뛰어내린다

그렇다면 네 슬픔은?

네 진눈깨비는? 네 고통은?

너의 심장은 발바닥에서부터 뛴다

너의 노래는 머리카락에서도 자란다

그렇다면 네 피는?

네 시선은? 네 호흡은?

물에 빠진 사람은 물을 짚고

허공에 빠진 사람은 허공을 짚을 때처럼

빠지는 것을 계속 짚을 때처럼

누가 계속 죽음을 뛰어내리는가

누가 계속 초읽기 하듯 심장을 뛰어내리고 있는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죽기 좋은 곳"이라 한 시인도 있었지요. 나는 가끔 가보지도 못한 프라하의 몰다우 강으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어요. 왜 하필 그곳이냐고 묻는다면 지극히 개인적 이유지만 체코와 스메타나와 몰다우에 집착한 내 30대의 어떤 매혹, 눈부신 슬픔 때문이었어요.

뛰어내리면 영혼과 심장과 달빛과 슬픔이 진눈깨비처럼 사라질까요? 그게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지금껏 뛰어내리지 않는 거죠. 삶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에요. 그런데 꽃 같은 이들이 자꾸 뛰어내려요. 우연의 일치겠지만 시인과 동명인 수려한 어떤 청년도 1년 전 그렇게 갔지요. 자고나면 그 낙화, 흥건한 피 때문에 가슴이 아파요. 어떡하면 저들의 슬픔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의 시인은 스스로 견자가 되라고 하네요. 잘 보는 사람이 되라는 거죠. 무얼 보나요? 절망하는 자기를 보라는 거죠. 나보다 더 비참한 사람의 견딤을 보라는 거죠. 우리 다 아프기 때문에, 아프게 하는 현실까지 포함하여 잘 보라는 거죠. 그러다보면 무언가 보일 거라 믿어 아직 나도 보고 있는 중이랍니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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