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는 간판급 스타의 트레이드를 단행하고 임기 1년을 남겨둔 박영길 감독을 선수단 관리 담당 이사대우로 물러나게 한 뒤 정동진 수석코치를 감독자리에 앉혔다. 84년 김영덕 감독의 부임 때 코치로 삼성과 첫 인연을 맺은 정 감독은 60, 70년대 중반 10여년간 국가대표 부동의 포수를 지낸 대구 야구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78년 이후 선수 시절 몸담았던 제일은행 대구지점의 평범한 행원으로 7년간 야구계를 떠나 있었으나 삼성의 줄기찬 영입작업 끝에 코치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5년 만에 감독에 올랐다. 당시 각팀 선수들은 연고지역 출신으로 대부분 구성됐다. 대구출신이 아닌 인사들이 거듭 삼성의 사령탑을 맡으며 생긴 미묘한 감정들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구단에 정 감독은 그 적임자였다. 코치 시절부터 큰형 노릇을 하면서 팀워크를 다지는 데 앞장서 왔던 그였다. 정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이전까지 나약하다고 알려진 팀의 이미지를 바꿔 강인한 야구를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걸 바꿨지만 곧바로 소득을 얻을 수는 없었다. 트레이드 파문의 최동원은 예전 같지 않았고 팀 성적도 딱히 눈여겨볼 게 없었다. 그나마 후반기 재일교포 김성길이 마당쇠와 같은 활약으로 4위에 올라 '가을 야구'의 초청장을 받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해부터 단일시즌제가 시작됐고 포스트 시즌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3, 4위간 맞붙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은 태평양 돌핀스에 1승2패로 주저앉으며 수모를 겪었다. 2차전에서 김용국이 만루홈런을 쳐 1점차 역전승을 거두며 포스트 시즌 11연패를 끊은 것을 위안 삼았다.
90년 새해가 밝자 정동진 감독은 굳게 결심을 했다. 대대적인 코칭스태프 개편을 단행, 수석코치에 유백만, 타격코치 우용득, 투수코치 유영수를 새로 영입했다. 권영호와 손상대는 은퇴시켜 코치로 기용했다. 프로구단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한 마티 디메리트와 미국 세미 프로팀에서 코치로 활동한 김광웅을 2군 코치로 받아들였다. 마티는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투수들에게 주자 견제력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면서 투심 패스트볼과 파워 커브라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도입, 마운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이바지했다. 김상엽이 그 대표적 수혜자였다.
진용을 갖춘 정 감독은 90년 1월 6일 팔공산으로 선수들을 집합시켰다. 하루 평균 16㎞의 산행으로 기초체력과 협동심 기르기에 나선 것. 팔공산 극기훈련은 3박4일간 이어졌다. 한 달쯤 뒤 선수들은 서울 근교의 공수부대에 모여야 했다. 류명선 계명대 감독은 "담력 테스트로 화장터 화덕에 들어가 갇히기도 했고,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권영호 현 영남대 감독은 얼음물 속에 들어갔다 앰뷸런스에 실려가기도 했다. 생애 처음 한 그해 겨울훈련은 특별했고 색달랐다. 가장 혹독했던 그 훈련은 모래알 같았던 선수들의 단합심을 이끌어내며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의지를 북돋우게 했다"고 말했다.
90년 5월 31일 삼성은 대구에서 OB 베이스를 맞아 6개 홈런 등 27안타를 폭발시키며 국내 최초로 전원 안타-매회 안타-전원타점을 동시에 수립하며 20대3의 대승을 거뒀다. 전날 '깡통투척' 사건으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이만수 대신 마스크를 쓴 박정환은 입단 9년 만에 처음으로 연타석 홈런을, 김용철은 홈런 2개를 때려 개인통산 100호 홈런을 수립했다. 6월 3일에는 빙그레를 4대2로 꺾으며 삼성은 7개 구단 중 가장 먼저 500승 고지 밟았다. 해태보다는 3개월이나 빨랐다. 또 131개의 홈런을 때려낸 삼성은 해태가 기록한 1팀 시즌 최다홈런 112개를 19개나 돌파했다. 가장 먼저 통산 800홈런도 달성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성적은 66승2무52패로 4위. 시즌 전 극기훈련 효과는 포스트 시즌서 진가를 발휘했다. 준플레이오프서 3위 빙그레에 2연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83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85년 통합우승)한 삼성은 9승1무23패의 참담한 기록을 상처처럼 달고 다녔다. 포스트 시즌서는 86년 OB와의 플레이오프서 3승2패로 이겨본 게 유일했다.
빙그레는 88년 플레이오프서 만나 3전 전패를 당했던 팀이었다. 대전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1차전. 삼성은 빙그레에 강한 류명선 대신 성준을 선발투수란에 써넣는 변칙 오더로 허를 찔렀다. 6번 이만수는 7회 홈런으로 0의 행진에 종지부를 찍으며 팀의 2대0으로 승리를 견인했다. 삼성은 대구로 돌아와 1만2천500석 만원 관중 앞에서 축포를 쏘아올렸다. 2차전서 3대4로 패색이 짙던 9회말 김용철이 동점 홈런을 쏘아올렸고 이만수가 승부의 마침표를 찍는 역전 홈런을 날렸다. 김용철의 홈런부터 시작된 대구 관중의 함성은 1시간 넘게 대구구장을 감쌌다.
포스트 시즌서 모처럼 웃은 삼성은 플레이오프에 올라 86, 87년 한국시리즈서 우승을 내줬던 해태 사냥을 준비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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