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지방분권형 개헌을 추진하자

올해는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 지역 지식인 선언이 있은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0년이고 지방분권운동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었지만 지방자치는 아직 '2할 자치'에 머물고 있고 중앙집권-수도권 집중 체제는 요지부동이며 수도권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대부분의 지역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

지방분권은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로의 권한 이양과 수도권으로부터 비수도권으로의 자원 분산이라는 두 가지 과정을 포함한다. 노무현 정부 때 권한 이양을 실현하려는 지방분권특별법과 자원 분산을 추진하려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통해 지방분권이 추진되었지만, 중앙집권주의자와 수도권 중심주의자의 기득권 고수 때문에 그 성과가 미약하였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지방분권 확대를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해왔지만 집권 4년차에 이른 현재까지 실질적 조치가 미흡하다.

1990년대 이후 추진된 지방분권이 아직도 미약한 상태로 지체되고 있는 근본 이유는 법률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온 지방분권 정책이 강고한 중앙집권체제를 지방분권체제로 전환시키는 동력을 창출하는 데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지방분권국가로 만들려면 법률에 기초하여 추진된 1단계 지방분권 개혁을 넘어서 이제 헌법에 기초하여 추진하는 2단계 지방분권 개혁이 일정에 올라야 한다. 즉 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방분권국가로 전환시켜야 한다.

선진국 중에서 드물게 고도로 중앙집권국가였던 프랑스는 1980년대 이후 법률에 기초하여 지방분권 정책을 추진해 오다가 보다 강력한 지방분권 개혁을 위해 2003년 지방분권형 개헌을 단행하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제2 프랑스 대혁명으로 불리는 2003년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프랑스는 지방분권국가로 이행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 제1조에서 프랑스의 국가 조직은 지방분권화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개정 헌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법률이 정한 권한을 실행하기 위한 명령제정권을 가진다는 행정 분권 및 입법 분권 조항, 지방자치단체가 법률에 기초하여 과세표준과 세율을 정할 수 있고, 권한 이양에 상응한 재원 이전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한 재정 분권 보장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지방분권 조항이 아예 없고 지방자치 조항은 구체적 내용도 없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헌법이 지방자치를 보호하고 강화할 수 있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헌법이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권을 법령에 종속시키고 과세표준과 세율을 오직 법률로 정하도록 함으로써 지방분권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분권을 가로막고 미약한 지방자치만 허용하고 있는 이러한 헌법으로서는 지방분권국가를 실현할 수 없다.

중앙집권-수도권 집중 체제가 대한민국을 서울공화국과 그 식민지로 양극화시키고 그 비효율성을 크게 높여서 지속 불가능하게 된 현 상황에서, 지방분권국가 실현을 위한 지방분권형 개헌이 시급히 일정에 올라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한 중앙권력 재편 위주의 분권형 개헌 논의가 제기된 바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지방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국가임을 명시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이 헌법 조항에 따라 입법, 행정, 재정 분권 관련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광역지방정부 간의 적절한 권한 배분을 헌법에 기초하여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발전 관련 입법과 정책을 다루는 지역대표형 상원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방정부의 조세권을 강화하고 권한 이양에 상응한 재원 이전을 보장하며 지방정부 간 재정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재정 분권 조항이 헌법에 포함되어야 한다.

지방분권형 개헌은 대한민국을 진정한 선진국가로 만들고 통일한국을 위한 초석을 놓는 일이다. 지방분권형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예컨대 '지방분권개헌추진국민회의'를 결성하는 일에 각계각층의 뜻있는 인사들이 나서길 기대한다.

김형기 경북대교수(경제통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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