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분지라 여름엔 유난히 덥다. 늘 사는 사람들은 별로 못 느끼지만 한 번씩 오는 사람들에겐 대구의 한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찜통 그 자체다.
야구에서 일반적으로 홈팀이 1루 쪽의 더그아웃을 사용하지만 유독 삼성 라이온즈만 3루 쪽 더그아웃을 사용한다. 바로 유별난 대구의 더위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즈도 관례에 따라 출범 원년엔 1루 쪽 더그아웃을 사용했다. 하지만, 더위에 항복한 김영덕 감독의 강력한 요구(?)로 더그아웃을 바꾸게 됐다.
서울 살다 대구로 이사 온 김영덕 감독에게 대구시민야구장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사막 같았다. 당시는 인조구장이 아닌 천연구장이라 지면의 열기는 지금보다 약했는데 문제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까지 1루 더그아웃을 정면으로 비춰 야간경기라도 4회까지는 그늘이 지지 않아 항아리 같은 야구장에서 한낮 더위의 끝자락까지 이를 악물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강한 햇살을 항상 마주해 바라보아야 하니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어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무더위는 선수들을 빠르게 지치게 하고 의욕도 떨어뜨렸다. 당시에는 샤워시설도 없었기 때문에 선수들은 몇 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경기가 시작될 무렵 선수들이 하나씩 사라지니 벤치의 집중력도 자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그아웃 안이 너무 덥다 보니 이탈하는 선수들만 나무랄 수도 없었다.
처음엔 곳곳에 선풍기를 달았으나 오히려 더운 바람만 일으켜 퇴출당했다. 다음엔 궤짝만 한 4각의 얼음 덩어리를 구입해 발밑에다 두고 더위를 식혔다. 그러나 시합을 뛰는 선수가 신발을 벗을 수도 없어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2년을 견딘 김 감독이 항복(?)한 대가로 선수들은 오아시스 같은 3루 더그아웃을 얻을 수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경기 집중력 약화가 이유였지만 "그 고생을 왜 우리가 해야 돼"라는 말 속에는 그 대상을 아군에서 적군으로 바꾸는 전략도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후대에 이어지면서 지속적인 효과가 있었다.
인조구장으로 바꾸면서 더 높아진 열기만큼 삼성 라이온즈의 승률도 높아진 것이었다. 최근 5년의 자료를 보면 7월과 8월 두 달간 삼성 라이온즈의 홈경기 승률이 0.648로 높다. 여름철에 강한 삼성 라이온즈는 동계훈련의 효과만 누린 게 아닌 것으로 짐작이 간다.
김용희 감독 시절에 더그아웃을 다시 1루 쪽으로 옮긴 적이 있는데 당시 우승을 간절하게 염원하던 삼성 라이온즈에 모 인사가 풍수지리를 적용해 추천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더위를 의식한 선수들의 요구로 1년 뒤 다시 3루 쪽으로 돌아왔다.
만일 대회규정에 홈 구단이 선택하지 않고 반드시 1루 쪽 더그아웃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면 프로야구의 판도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여름철 기자나 타 구단 코치'선수들이 대구를 떠나면서 꼭 하는 말이 있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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