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뽀로로 신드롬

'우주 소년 아톰', 친구와 환경,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뾰족머리 로봇소년에게 유년의 우리는 얼마나 열광했던가. 까만 반바지에 빨간 장화(흑백TV에선 회색)를 신고 엉덩이와 손가락에서 '에네르기파'를 날리며 곧잘 위험에 처한 지구를 구해내던 아톰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정의의 사도였다. 후기산업사회의 결정타였던 아폴로 11호 발사 중계로 우주와 기계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이 제트 분사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아스트로 보이' 즉 아톰에게 집중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 초반이었다.

오빠들과 화면조정시간부터 TV 앞에 앉아 '철완 아톰' 방영을 기다렸던 것은 무슨 요일이었던지 모르겠지만, 아톰이 그려진 책받침과 노트 심지어는 딱지까지 같이 모았던 기억은 난다. 늘 티격태격했던 막내오빠와는 아톰이 우주에서는 제트 분사를 로켓으로 갈아 끼운다는 것과 수십 가지의 말을 구사하며 눈과 귀도 가공할 힘을 가졌다는 등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눈 대화까지 어렴풋하다.

하지만 참 의문스러운 것이 있다. 그때 내가 아톰에게 열광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가끔 어른들에게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천상 가시나'란 소릴 곧잘 듣던 그때의 나는, 눕히면 눈을 감는 마론 인형 따위에 열중했던 듯하고, 종이 인형과 공주풍의 옷을 사인펜으로 곱게 그려 친구들과의 소꿉놀이를 즐겨하던 터였다. 게다가 그 후 출현한 철인 28호, 마징가Z, 건담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톰 이후에 키티, 스누피, 베티 붑, 등의 캐릭터에도 유사한 열정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그저께는 마트에서 뽀로로도 충동구매했다. 어린이들에게 '뽀통령' '뽀느님' '뽀처님'으로 추앙받으며, 자산가치 수조 원대라는 우리의 그 토종 캐릭터 말이다.(앗, 내가 돈을 주고 구입한 유일한 국산 캐릭터다.)

무쇠덩어리가 아닌 인간 친화적 로봇이면서 프랑켄슈타인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였던 아톰이 데즈카 오사무의 캐릭터였음을 안 허탈한 충격을 지나 '테세우스의 배' 식의 관념도 지나, 어쩌면 이 글로 인해 키덜트(Kidult)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할 테지만, 나는 노란 안경을 쓴 뽀로로가 지금 무진장 사랑스럽다. 내가 아는 모든 아기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을 만큼. 드디어 우리도 글로벌한 캐릭터 하나 가지게 된 모양이다.

박미영(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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