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와 사랑에 빠졌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라이브 실황 CD를 봤다. 그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작곡을 했던 1개월 동안 오로지 '만화방 미숙이'란 작품 속에 빠져 있었던 시간들을 더듬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뜨거워진다. 갑자기 컴퓨터를 켰다. 지금껏 만들었던 작품들이 하나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지나간 사랑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필자가 사랑했던 수많은 캐릭터도 떠오른다. 무척 보고 싶다.
매번 뮤지컬을 만들 때는 많은 사랑을 한다. 같이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같이 만드는 작품을 보는 관객들을 사랑하며 무대를 사랑하고 조명, 빛 등 작품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한다. 또 작곡가 입장에선 곡을 쓸 때마다 작품 속의 각 캐릭터로 변신해 그 입장에서 노래한다. 그가 사랑한 사랑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다. 아마 그 역을 맡은 배우보다 더 찐하게 사랑했으리라. 사랑 없이는 작품을 만들 수가 없으니까….
이 세상 많은 사람 중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아마도 아직 사랑스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답답해하기 전에 아주 작은 것부터 살펴보자. 예쁘고 사랑스런 모습이 보일 것이다. TV에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데 그들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사랑을 많이 배운다. 사랑 없이는 생활의 달인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준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스캇 팩은 "사랑은 의지의 행위이고 의지에는 선택이 따른다. 우리가 반드시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사랑에 대하여 정의하기를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했다. 정말 모호하게 잘 풀어놓은 정의인 것 같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이 뭔지 물어보면 각기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충분히 개인적인 성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필자는 진정한 사랑이 감정적이기보다는 의지적인 것이라는 말에 더 끌린다. 10년 이상 함께하며 많은 상처와 힘든 시기를 주었던 뮤지컬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 기억들도 있지만 아직 피지 않고 망울만 맺은 작은 꽃봉오리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가꾼다고 정신이 없기도 하겠다.
갑자기 예전에 썼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넘버 중 '사랑이란'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마치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것처럼/ 사랑이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마치 기나긴 겨울에 꽃을 보듯이/ 어떤 땐 너무 빨리/ 어떤 땐 너무 늦게'. 이렇듯 언제 올지 모르지만 언제든 사랑을 만나면 사랑에 푹 빠져보자.
윤 정 인 뮤지컬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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