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치권 십자포…재벌들 "소나기는 피하자"

경제단체장들이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해 국회에서 열리는 공청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지난달 말 국회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청회 불참 이후 한 달 만의 일이다. 정치권의 파상공세에 버티기를 넘은 반발 자세를 보이던 이들이 U턴을 하게 된 데는 정치권의 대 재계 시선이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한 때문이다.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부산 한진중공업 사태도 정부와 정치권의 재벌에 대한 불만을 강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정치권에서 쏟아낸 대기업 때리기 발언들은 전례가 없을 정도였다. 이 대열에는 여야 구분이 없었다.

시발점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의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 논의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한 것이다. 정치권은 허 회장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파상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정치권의 재벌'대기업 공격은 허 회장이 촉발을 했을 뿐 오래 묵은 문제라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7'4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정책 이슈가 '좌클릭'이었을 만큼 사회 양극화, 중산층의 붕괴, 서민생활 악화 등은 정치권의 주요 화두다. 그런 시점에 부의 독점과 편중의 주역이라는 재벌'대기업 대표자의 입에서 나온 포퓰리즘 발언은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정책과 친서민 정책이 승부를 가를 것으로 보고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재계의 반격을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자신도 대기업(현대중공업)의 오너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1일 트위터에 "전에는 기업인들이 경제발전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2, 3세 체제로 가면서 회사로 갈 돈을 편취, 자기 주머니만 채운다는 인상을 주는데 걱정"이라고 밝혔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재벌 대기업들이 골목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재벌 2, 3세들이 정부와 국민, 기업의 오너가 합심해 이뤄낸 막대한 부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책임은 '나 몰라라'하고 골목길로 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세계와 경쟁해야 할 우리의 대기업들이 골목상인과 경쟁해서 골목상권을 초토화 시키는 것은 K-1 격투기 선수가 유치원생을 두들겨 패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유통 대기업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운영을 비판한 것이다.

심지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대기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착취'라고 했다. 홍 대표는 라디오에 출연, "대기업은 납품 단가와 이윤 감소의 책임을 중소기업에게만 돌리니까 언뜻 떠오르는 단어가 착취"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책임을 하지 않는 기업에게 추가 감세 철회를 해주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대기업에 한해서는 추가 감세를 철회하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고 법인세의 추가 감세 철회에 부분적으로 공감했다.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심지어 대기업의 자발적인 상생 노력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고 선언했다. 손 대표는 11일 "대기업은 돈벌이만 된다면 중소상인이든 간에 무차별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여론의 화살이 암만 빗발쳐도 상관하지 않는다"면서 "대기업들이 말로는 상생협력을 이야기하지만 구호에 그치며 생색내기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민주공화국에서 용납될 수 없는 재벌 특권 공화국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도 21일 "대기업이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돈을 번다"며 "대기업이 새로운 영역에서 국부를 창출하기보다는 안정된 시장에서 땅 따먹기식으로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문제"라며 "그런 과정에서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 부산 지역 여론 악화의 원인이라고 보는 여권 인사들의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 대한 비판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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