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랑

아프리카 수단 남부 지역 톤즈에서 의료, 선교, 교육 활동을 펼치다 젊은 나이에 작고한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은 성자로 추앙된다. 아프리카의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한 그의 생전 삶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자 진정한 행복은 사랑임을 실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검은 땅에 희망의 사랑을 전파한 그는 나와 너의 삶이 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이 내 삶의 일부가 될 때 사랑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를 기린 평전의 제목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매괴 순례지 성당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파리외방 선교회 소속 임가말로 신부가 자신이 세우고 50여 년간 봉직한 감곡 매괴 성당 신자들에게 자주 한 말이다. 이민족 신자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묻어나는 말로 '코쟁이'나 '핫바지'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인간은 모두 하나이며 하나의 근원에서 귀하게 태어났다는 말로도 들린다.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다는 이 말은 어딘지 선 불교의 정신과도 통하는 듯하다. 기독교나 불교의 종교적 가르침이 궁극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기독교적 사랑과 불교의 자비는 비슷하다. 남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자비심은 생사의 윤회 속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과 깨달은 부처를 하나로 보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사랑과 자비는 같다.

평화의 나라로 상징되는 노르웨이에서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반발로 가득 찬 광신적 민족주의자의 무차별 총격으로 70여 명이 죽었다. 그러나 참사 이후 곧 노르웨이는 오열과 증오보다 관용이 물결 쳤다. 추모식과 추모 거리 행진에 참여한 20여만 명의 시민들은 장미꽃을 들고 사랑과 희망을 얘기했다. 총리는 이번 사건에도 민주주의와 개방성, 휴머니즘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왕세자는 비극이 일어났지만 관용과 자유의 정신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엄청난 비극 앞에서 관용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포기할 수 없다는 그들의 정신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나와 너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사랑은 비뚤어진 마음마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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