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이 마지막 최부자로 국민들의 칭송을 받기까지에는 동생 3명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최윤(1886~1969)
최준의 첫째 동생. 경전 및 서예, 바둑에 능통했고 인간문화재 국악인 박동진도 그를 수년간 사사했다고 경주시사는 전한다.
그는 독립운동가 형제들 사이에서 자신이 할 일을 고민하다가 형이 거절한 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받아들인다. 집안이 허물어질지도 모를 위기에서 가문 유지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 졸지에 친일파가 된 한을 달랠 길 없어 거문고, 바둑, 서예 등에 심취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돼 철저한 조사를 받았지만 학병권유 등 사소한 친일 행위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져 체포된 중추원 참의 중 가장 먼저 석방됐다. 오히려 경주역사와 금융조합 등을 건설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경주문화협회 설립, 경주예술대학 개교 공헌, 경주고전무용연구소 개원 등 경주의 문화예술 창달에 전력했다. 남아 있던 재산은 대구대 설립 때 기부했다.
◆최완(1889~1927)
최준의 둘째 동생. 1909년 안희제 이원식 윤병호 서상일 등 80여 명의 애국지사와 함께 신민회 계열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했다. 국권회복에 뜻을 두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고 재무부위원으로 선출됐다가 체포돼 국내로 압송된 후 모진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38세에 요절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90년 최준과 함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최순(1892~1948)
막내 동생. 백산상회의 상무를 보면서 백산과 형 최준을 도와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백산상회 해체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고향을 떠났다가 해방이 되면서 고향에 돌아왔다. 여러 사람의 권유로 제헌국회 출마를 준비하던 중 좌익을 가장한 서북청년단에 의해 집에서 피살됐다. 서북청년단이 지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암살한 것이다.
최정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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