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게 이름은 특별한 존재다. 이름을 잘 지으면 건강운'재물운'직업운 등이 따라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작명가에게 의뢰해 이름을 짓는다. 살다 보면 이름과 직업의 궁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이름 따라 직업이 간 경우다. 이름과 잘 어울리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신복-산부인과 전문 간호사
임신복(52'여) 성모여성병원 간호부장은 어릴 때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 놀림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께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냐고 따지기도 했다. "제 이름은 믿을 신(信), 복 복(福)자를 쓰는데 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 것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8남매를 두셨는데 신을 돌림자로 사용해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름만 놓고 보면 좋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성과 합쳐지면 묘한 의미를 연출해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변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임 부장은 간호사가 된 후 지금까지 산부인과에서만 근무했다. 특히 분만실이 주활동 무대였다. 1983년 곽병원 산부인과에서 간호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성심병원-세강병원-성모여성병원으로 직장을 여러 번 옮겼지만 산부인과는 떠나지 않았다. 20년 넘게 이름 같은 삶을 살아온 셈이다.
산부인과 전문 간호사가 천직이 되었지만 임 부장의 어릴 적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가 아니라 초등학교 교사였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좋아 대구교대에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습니다. 다른 대학에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재수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간호대 원서를 사가지고 오셔서 간호사도 보람 있는 직업이라며 권하는 바람에 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간호대에 들어갔지만 의외로 공부가 재미있었다. 특히 모성간호가 적성에 맞았다. 그래서 그녀는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하지 않고 1년간 공부를 더 해 간호조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임 부장은 어릴 때를 제외하면 이름 때문에 손해를 본 기억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덕을 많이 봤다는 것. "이름을 보고 가명이 아니냐고 묻는 산모들이 있습니다. 본명이라고 말하면 직업과 잘 어울린다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줍니다. 제 이름을 소재로 산모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신뢰감이 생겨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 부장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산부인과 전문 간호사가 된 것이 운명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직업과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까지 제 손을 거쳐 출산한 아이가 2천 명을 넘습니다.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을 볼 때 참 보람있는 직업을 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 부장은 성모여성병원에 온 뒤로는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많이 줄었다. 간호부장으로 인력 관리가 그녀에게 주어진 주업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분만실을 향해 있다. 가끔씩 난산이 있을 경우 경험 많은 그녀가 분만실에 투입된다. "분만 시 산모뿐 아니라 의료진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아기를 받는 순간 모든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아기를 받을 때마다 생명의 신비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소중한 생명을 마주 대하는 이 일을 즐기면서 오래오래 하고 싶습니다."
◆안견-안과 전문의
안견(37'안견안과) 원장은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시대 화가 안견과 이름이 같다. 한글뿐 아니라 한자까지 같다. 안견을 롤 모델로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조부께서 작명을 하셨는데 안견의 그림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손자 이름으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하시고 한자를 살펴보니 편안할 안(安)에 굳을 견(堅)으로 의미도 좋아 제 이름으로 삼으셨답니다."
평범하지 않는 이름 때문에 주위 시선도 많이 받고 놀림의 대상도 되었지만 정작 안 원장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 무덤덤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 때 무언가를 시키기 위해 선생님이 출석부를 보면 어김없이 제가 지목되었습니다. 친구들도 가끔 이름을 갖고 놀리기도 했지만 괘념치 않았습니다. 제 이름이 남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제게는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늘 듣고 자란 덕분에 제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안 원장은 이름을 의식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안과의사가 될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해부학에 관심이 많아 의대에 진학했고 의대 졸업 후 전공을 정할 때도 이름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 "안과는 조금 특이한 의료 분야입니다. 안과에서 배우는 지식과 학부에서 배우는 지식은 연관성이 떨어져 안과 전문의가 되려면 공부를 새로 해야 합니다. 조금 색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 안과를 선택했습니다. 안과를 선택한 뒤 남들이 '너 이름 때문에 안과 왔지' '혹시 아버지가 안과 의사냐'고 많이 묻는 바람에 이름과 전공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 원장은 4년 전 개업을 할 때 병원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때 "네 이름 그대로 사용해라. 잘 어울린다"는 큰어머니 말을 듣고 안견안과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자는 의료기관 특성에 맞게 조금 바꾸었다. 굳을 견이 아니라 볼 견(見)자를 사용해 병원 모토를 '안견(安見)-편안하게 본다'로 정했다. 병원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개업 초기 견을 개견(犬)자로 오해해 "키우던 개가 눈이 아픈데 데리고 가면 치료할 수 있냐"는 문의를 받았다. 또 "안견은 안경을 잘못 쓴 것 아니냐? 안경 전문 맞춤 병원이냐?"는 다소 황당한 질문도 받았다.
그러나 안 원장은 흔하지 않는 자신의 이름이 좋다고 했다. 자신의 직업과 잘 어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병원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조금 독특한 이름도 부르기 불편하거나 의미가 나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특이하면 장단점이 있습니다. 쉽게 기억되기 때문에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것이 장점이지만 이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쁜 의미로 한번 기억되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동할 때 조심하게 됩니다. 이름 때문에 자신을 추스를 수 있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또 그는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알게 모르게 이름이 사람의 장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안과의사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나쁘면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 본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름이 좋으면 자신의 이름에 자부심을 갖게 되고 이름에 맞게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 장래가 밝아질 수 있습니다."
◆김교원-교직은 나의 운명
김교원(58) 경북대 지질학과 교수는 이름대로 교원이 된 경우다. 김 교수는 본명 못지않게 직업과 잘 맞는 아명(兒名'아이 때 이름)도 갖고 있다. 아명을 보면 교수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릴 때 조부가 지어 준 아명은 대교(大敎)다. 그는 아명이 점지(?)한 대로 대학교수(大學敎授)가 됐다.
어릴 때 이미 교수가 될 이름을 가졌지만 김 교수가 대학강단에 서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취직을 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당시 시국도 어수선하고 유학을 갈 만한 형편이 안돼 취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업체 직원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던지 김 교수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1982년 유학길에 올랐다. 태국의 명문대학인 AI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교수는 1997년 경북대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게 됐다.
김 교수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름이 개인의 삶과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아마도 이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학을 갔다 온 뒤에도 기업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경북대에 교수 자리가 났습니다. 당시 월급을 놓고 보면 대학교수는 큰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자꾸 대학교수 쪽으로 끌리는 바람에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름이 대학교수의 길로 저를 인도한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을 돌아왔지만 결과적으로 이름을 좇아 직업을 갖게 된 김 교수는 이름이 가져다준 필연적(?) 삶에 만족하고 있다. "기업체에 계속 근무를 했다면 경제적인 여유는 더 있었겠지만 정신적인 여유는 지금만큼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이름과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김 교수는 6촌 형제를 포함하는 집안 계모임을 하는데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돌림자로 가르칠 교(敎)자를 사용하다 보니 학교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는 것. 계모임에 참석하는 형제들 이름은 교원'교문'교정'교화'교탁'교훈 등이다. 김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형제들이 모이면 학교 하나는 거뜬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형제들 이름 속에는 학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저와 6촌 동생인 교탁이 뿐이어서 학교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자신의 이름(교탁) 앞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탁(중등교사)이도 이름과 직업이 천생연분처럼 엮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정운철·우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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