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을 믿었더니 대박났죠."
다정사는 교동 귀금속 골목에서도 특이한 가게다. 보통 금을 주로 취급하는 다른 매장과는 달리 가게 진열대에는 온통 은제품들이다. 가게 한쪽에는 공구들이나 포장재들도 눈에 띈다. 곽상원(46) 대표는 "우리 가게는 은 액세서리와 귀금속 부자재를 판매하는 곳"이라며 가게를 소개했다.
다정사도 처음엔 다른 금은방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아버지 곽재봉(75) 씨는 1970년대에 금은방을 열기 위해 골목에 들어왔다. 곽 대표가 처음 골목에 발을 디딘 것은 20살 때. 20살의 곽 대표는 아버지를 도와 다정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에는 가게들도 다들 구멍가게처럼 작았고 수도 100개도 안 됐어요."
곽 대표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젊은 건축학도는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 업체에 취업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설득으로 1992년 다정사를 이어받아 20대에 홀로 장사를 시작했다. "귀금속은 가게에 있는 물건 만으로도 재산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주로 가족끼리 운영을 하고 2세가 경영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아요."
곽 대표가 다정사를 이어받은 90년대에는 골목에 장사가 안 되는 가게가 없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하지만 IMF가 찾아오고 금값이 오르면서 곽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금 장사는 더 이상 승산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곽 대표는 '은'을 선택했다. "7년 전 금값이 오르는 걸 보고 은이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했죠. 당시만 해도 금은방에서 은은 구색 맞추기용으로 갖다놓는 수준이었습니다."
곽 대표의 직감은 통했다. 금값은 계속 오르는데다 업체도 계속해서 생겨나 경쟁이 과열된 것이다. 반면 다정사는 은제품을 취급하면서 소위 '대박'이 터졌다. 단가가 50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 은제품으로 금을 판매할 때와 비슷한 매출을 올렸다. 2008년에는 시장경영진흥원이 선정하는 '전국우수점포'에도 선정됐다. "단골을 잃을 것을 감수하면서도 은을 선택했죠. 은은 금보다 손도 더 가서 신경도 많이 쓰였답니다"
다정사는 옛 단골은 잃었지만 더 많은 새 단골을 얻었다. 다정사 제품이 입소문이 나면서 한 번 방문한 고객들은 다시 이 곳을 찾고 있다. 특히 디자인이 다양하고 젊은 층이 좋아하는 형태라 특히 젊은 단골들이 많다. 다른 사람이 다정사의 제품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찾아왔다는 새로운 손님들도 이어진다. 곽 대표는 "은제품은 패션용이기 때문에 역시 디자인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다양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귀금속 골목을 지켜가겠다"며 웃었다. 김봄이기자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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