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최모(34'여) 씨는 4개월 전부터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손발이 붓고 뻣뻣한 느낌이 드는데다 온몸에 통증과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통증은 어깨, 목 등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졌고, 아침에 일어나면 팔다리가 굳는 증상과 함께 가벼운 운동에도 근육통을 느끼곤 했다. 잠이 잘 깨고,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기는커녕 피로감만 더해졌다. 관절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해서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다른 병원을 찾아 이런저런 검사를 했지만 그저 푹 쉬라거나 영양제를 먹어보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하도 온몸이 쑤셔서 소염진통제 등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을 구해 복용하거나 발라보았지만 특별히 더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검사상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 없으니 뇌 MRI를 한 번 찍어보자거나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까지 들었다. 최 씨는 결국 류마티스내과를 찾아왔다.
◆아무도 몰라주는 고통
최 씨에게 내려진 병명은 '섬유근통 증후군'(fibromyalgia syndrome). 원인이나 치료법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증상이 나아지는 효과도 가장 미미한 질환 중 하나다. 항상 온몸이 아픈 '만성 전신통증'(chronic widespread pain)의 한 형태이며 가장 흔한 원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섬유조직염'(fibrositis)으로 불렸지만 실제 염증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섬유근통 증후군은 역학조사가 시행돼 있는 몇 안 되는 질환 중 하나다. 국내 전문 연구진이 경북 북부지역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역학 연구를 한 것. 이에 따르면 만성 전신통증 환자의 유병률은 14% 정도로 외국의 10% 에 비해 다소 높았다. 같은 조사대상 중 섬유근통 증후군의 유병률은 2.2% 정도로 외국과 비슷했다. 여성이 9배나 더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30~50대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노인층에서도 많다. 특정 직업군에서 발병 위험성이 더 높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특징적인 증상들로는 온몸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근골격계 통증과 함께 신체 곳곳의 압통점(눌러서 아픈 점) 등 통증 관계 증상이 두드러진다. 아울러 뻣뻣함, 쉽게 피로함, 팔'다리의 이상 감각, 수면장애, 기억장애, 우울증, 인지기능장애, 자율신경장애 등 비통증성 증상들이 동반돼 나타난다. 통증의 양상도 다양하다. 타는 듯한 느낌, 찌르는 듯한 느낌, 쑤시는 느낌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팔'다리와 더불어 몸통과 허리 주위, 어깨 주위 등 전신에 모두 나타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가벼운 활동을 한 뒤에도 심한 피로감과 근육통이 나타날 수 있다. 괜찮을 때도 일정 정도의 통증은 항상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관절통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관절 파괴는 나타나지 않는다.
회사원 최 씨를 괴롭히는 것은 통증과 피로감만이 아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최 씨는 "이 병을 모르는 사람은 겉보기에 멀쩡하기 때문에 꾀병을 부린다거나 그저 좀 쉬면 낫는다,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등의 무책임한 말을 하곤 한다"며 "아침에 푹 자고 나서조차 탈진할 듯한 피로감을 느끼는데도 가족조차 몰라준다"고 하소연했다.
◆압통점 검사 통해 진단
원인은 복잡하며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다. 가족 중에 섬유근통 증후군이 있을 때 같은 병이 발생할 확률이 8배 정도 더 높다. 따라서 유전적, 가족적 원인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외국 연구에서도 이런 유전적 성향에 대해 일관된 결과를 보고하지는 못하고 있다. 더불어 스트레스, 감염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환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통증처리계의 이상이다. 가벼운 접촉과 같은 비통증성 자극만 와도 통증을 느끼거나 아픈 자극을 정상인보다 더 큰 강도로 느낀다. 기능적 MRI로 뇌에서 통증처리를 담당하는 부위를 촬영해 보면 정상인에 비해 훨씬 적은 압력자극으로도 뇌가 아프다고 느끼는 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뇌에서 척수를 통해 통증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노에피네프린)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견된다. 그만큼 통증을 정상인보다 강하게 느낀다는 것.
1990년 미국류마티스학회가 정한 분류기준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광범위한 부위의 통증과 함께 ▷머리 밑에서 다리에 이르는 18군데의 압통점 검사 중 11군데 이상에서 통증을 느끼면서 ▷이런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이 없는 것이 증명될 때 '섬유근통 증후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문제 때문에 미국류마티스학회는 2010년부터 새로운 분류기준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압통점 검사와 함께 비통증성 증상(수면, 우울증, 피로감 등)에 대한 설문과 평가를 포함시키는 쪽으로 바뀔 전망이다.
◆다양한 약제 개발돼 사용 중
치료적 접근법(치료법이 아니라)도 개선되고 있다. 과거엔 진통제나 진통소염제 등으로 증상만 조절했다. 최근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노에피네프린)을 조절하는 약제들도 개발돼 사용 중이다. 항우울제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항우울제를 쓸 경우, 마치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약을 먹는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내과 박성훈 교수는 "만성 통증 환자에게 항우울제 처방을 하는 것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항우울제와 더불어 근이완제, 단순 진통제, 항전간제(간질치료제) 등이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마약성 진통제나 스테로이드 제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고, 약물요법과 더불어 인지행동치료(정신과 상담), 운동치료, 물리치료 등의 비약물적 치료도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외국 연구에 의하면, 만성 통증 환자에게 치료 시작 전 '섬유근통 증후군'이라는 진단만 붙여도 여러 증상이 호전된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이 병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제공=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 및 퇴행성관절염 전문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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