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어느 문학치료사의 여름 일기

어떤 일에 매진하다가도 자만에 빠질 때면 그 일의 본질을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문학치료사로서의 초심(初心)을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제게 묻습니다. 문학치료란 무엇인가? 나는 왜 문학치료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문학이 지닌 치유적인 힘을 통해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 문학치료의 본질이라고 단순화한지 오래이지만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자문(自問)해 보는 것이지요.

문학치료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자격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증'을 요구하는 사회, '증'을 좇는 사람들…. "문학치료는 느림의 미학입니다. 문학의 치유적인 힘을 먼저 자신부터 경험해 보세요"라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싸늘한 반응에 깊은 회의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 좋게도 그런 소모적인 회의감에 빨리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국제학술대회에서 시(詩)치료 전문가인 존 폭스를 만난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는 뼈와 신경에 생긴 질병으로 여러 번 수술을 받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은 사람입니다. 시련을 겪는 동안 그에게 구원의 밧줄이 되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시'였지요. 시 속에서 발견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과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로 어루만져 준 사례를 담은 발표문은 마치 수필과도 같았습니다. '인식'이니 '탐구'니 '병치'니 '적용'이니 하는 전문용어나 흔히들 우리가 기대하는 현학적인 기법이 없는데도 그동안 보아왔던 문학치료 이론서와 논문들, 학술대회 발표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녹아 있었습니다.

책이나 프린트된 시 대신, 실용 단어들을 적은 카드와 수백 개의 사탕이 함께 담긴 단어 사발을 들고 아이들의 내면을 끌어내는 치유 과정은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직접 고른 단어들을 느껴보고 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창조적 표현을 해내는 아이들이야말로 자신을 가르쳐준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그의 말은 이후 제가 문학치료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한 발표자를 향해 누구보다 큰 박수로 환호하던 그의 모습은 한 폭의 '인상화'처럼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서의 문학치료를 만났던 그날 이후 저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문학치료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제가 당당해졌다는 것입니다. 문학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 통찰의 기능을 마음속에 가둬두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성이 생긴 덕분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힘주어 말합니다. "문학치료를 이론으로 알려 하지 말고 온몸으로 느껴 보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세요. 사랑하면 더 잘 보입니다"라고.

김은아(영남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마음문학치료연구소장 happymind10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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