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은 한국프로야구가 큰 관심을 받으며 상업적으로 재도약한 역사적인 시기였다. 야구장에 뜰채나 잠자리채가 등장한 유례없는 진풍경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2주 동안 나날이 증폭되는 시선으로 전 국민의 애를 태웠던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56호 홈런볼 탄생은 이후 중국에 이승엽 사인볼 전용 공장이 등장할 정도로 관련 상품의 수요를 급증하게 만들었다. 위대한 업적을 만든 이승엽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시즌 후 이승엽이 해외로 진출, 더는 사인을 받기가 어렵게 되자 구단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승엽 사인볼 확보에 업무를 제쳐야 했고 삼성 선수들조차도 주위의 부탁으로 줄을 서 사인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그러니 가장 괴로운 사람은 바로 이승엽 본인이었다.
시즌 후 연이어 가진 플레이오프에서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사인에 시달려 제대로 경기에 전념하기도 어려웠다. 구단은 물론 집에까지 120개가 담긴 사인볼 박스가 밀려들었다.
일본 진출 직전까지도 이승엽은 그동안 정(情)을 생각해 사인을 거절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많지 않았던 자유시간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본에 진출하기까지 6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이승엽은 할 수 있는 만큼 사인을 했지만 더 많은 물량이 필요했다. 여전히 요청은 쇄도했고 난감했던 삼성구단은 궁여지책으로 모방 전문 사인가를 물색해 봤지만 이승엽의 사인이 어려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인쇄된 이승엽의 사인볼로 대체하고 이승엽의 로고가 들어 있는 잔여 물량은 해를 넘겨 일본시즌이 끝나 귀국하는 이승엽에게 조금씩 친필로 받아야 했다.
이승엽은 누구에게나 친절해 어떤 때든 마다하지 않고 사인을 해줬지만 예외가 있었다. 시즌 후 친구들과 당구를 즐기는 시간에는 절대로 사인을 하지 않았다. 당구를 치는 동안 사인하면 당구 게임에 지는 징크스가 있어 사인을 받으려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친구들과의 당구 게임에서 이승엽의 승부근성은 대단했다.
프로구단 중 삼성의 사인볼은 가장 인기 있고 많이 배포되는 데 올해는 차우찬, 김상수, 배영섭의 사인 요청이 많아지면서 전체 물량이 늘어났다.
가장 귀엽게 느껴지는 사인볼은 차우찬, 가장 멋있다고 평가받는 사인볼은 오승환의 것인데 최근 오승환이 사인하기를 잠시 접었다.
오승환의 라커룸에는 늘 50개 정도의 공이 사인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팀이 선두권을 다투는 중요한 시기라 오승환은 손목 보호를 위해 일시 절필을 선언했다. 종이와는 달리 공에 사인하려면 펜을 쥔 손가락과 손, 팔에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50개 정도를 하고 나면 공을 던지는 손이 뻐근해지기 때문에 취한 조치다. 대다수 투수는 이런 이유로 경기 당일에는 사인을 하지 않는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