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혐오증
다툼은 인간의 일상사다. 개인과 집단의 갈등이 편 가름으로 번지고 지역 간, 국가 간 전쟁으로 비화하는 등 인간 역사는 싸움의 연속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런 다툼의 원인은 대개 개인과 집단 이익, 명예, 권력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로부터 어떤 전쟁이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술수와 계략은 다반사였다.
집단 심리를 부추겨 분쟁을 일으키고 그 틈을 노리는 심리 공작의 하나가 '집단 혐오증'이다. 잘못된 현실을 남 탓으로 돌리고 희생양을 만듦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정치사회적 목적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화론'(Yellow Peril)은 좋은 사례다. 전제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권력욕이 컸던 그는 독일의 지위를 강화하고 세계 진출 야망을 위해 황인종 배척이라는 정치론을 내세워 서구인들의 집단 혐오증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는 1차 세계대전 개전 책임의 멍에를 쓰면서 망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르웨이 연쇄 테러도 마찬가지다. 유럽 경제 위기를 이슬람 등 소수 인종 탓으로 돌려 집단 혐오증을 부추기는 계략이 한 극단주의자의 폭력으로 표출됐다. 이런 집단 혐오증의 치명적인 폐단은 바로 자기 합리화와 미화다. "극단주의를 낳은 유럽의 '내부의 적'은 다문화가 유럽을 파괴한다고 믿는,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백인들"이라는 미국 국제 문제 전문가 존 페퍼의 주장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일본 자민당 의원들과 극우 학자들의 울릉도 도발이나 독도 영유권을 명시한 방위백서도 저급한 정치사회적 공작이자 계략이다. 50년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과 극우 세력들이 독도를 제물로 유리한 정치 상황을 만들기 위한 선동이다. 한류의 진원지라며 후지TV 불시청 운동을 벌이는 일부 일본 연예인과 이에 동조하는 일본 청소년들의 도를 넘은 혐한증은 선동의 결과가 어떤지를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집단 심리에 휩쓸리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자기 이익과 목적 달성에만 집착하는 세력들의 집단 혐오증은 그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1873년 메이지 신체제에 대한 일본 내 불만을 한반도 침공으로 돌리려 했던 정한론의 음모가 그 후 일본 역사에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 일본인들은 다시 한번 반추해 봐야 한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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