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토니 주트/플래닛

금융위기·복지정책 퇴조·실업률 급증…더 나은 세상은?

주요 공공 산업 부문의 민영화 요구, 효율성을 위한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 작은 정부에 대한 지향.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신봉되어온 이런 정책들은 비정규 일자리의 양산과 실업률 급증, 결혼기피와 출산율 저하 같은 부정적 결과들을 낳고 있다. 경제적 가치를 최상으로 여기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읽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물질적 사리사욕의 추구를 미덕으로 삼아 왔다. 정말 이러한 욕망의 추구를 배제하고 나면 우리는 공동의 목적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마비되어가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 책을 쓴 저자는, 규제받지 않은 자유 시장과 효율성을 기치로 내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온갖 불평등과 극심한 빈부 격차에 격렬한 분노와 슬픔을 드러낸다.

저자는 영국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한 공공재를 민영화시켜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이것은 비용절감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필수적인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복지의 축소는 사람들의 삶을 악화시키고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어렵게 채택된 복지정책들이 후퇴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닥치게 될지 우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정치인들의 무능과 시민의 무관심을 안타까워하며, 어떤 경우에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정치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말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경제 성장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사회적 병폐를 줄이는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한다. 번영과 특권은 파이의 크기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확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증언한다."

"사람들이 정치와 정치가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공공 정책의 의사결정에는 본질적으로 윤리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정치적 논쟁은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본능적으로 도덕적 존재이며, 따라서 자신의 도덕적 본능을 표현할 만한 언어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다시 한 번 정치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떠한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토니 주트는 역사를 되돌아볼 것을 권한다. 1914년 이전에 세계는 이미 한 차례의 세계화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복지국가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탄생했다. 서구의 복지국가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전례 없는 안정과 번영, 평등의 확산을 가져오며 파시즘을 불러온 원동력이었던 중산층의 불안과 불만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복지국가를 버리고 다시 불안의 시대에 들어섰는가? 토니 주트는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20세기 역사의 아이러니를 들려준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그 앎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역설한다.

우리와는 고민의 시점이 다른 점도 있지만, 금융위기나 복지정책의 퇴조, 실업률의 급증 같은 세계적 추세 속에서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상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는 저자의 외침은, 책을 쓸 당시의 그의 상황과 맞물려 더욱 절실하게 공감이 간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