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시즌이면 잡지며 신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획이 있다. '휴가지에서 들으면 좋을 음악 베스트' 또는 '드라이브하면서 즐길 만한 음악 베스트' 등이 그것이다. 이런 기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악이 있는데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와 비치보이스의 '서핀 유에스에이'다. 여름 시즌을 겨냥한 음악들이야 매년 수도 없이 쏟아지지만 이 두 음악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그야말로 스테디셀러다.
이 가운데 비치보이스는 경력이나 명성에 비해 여름에나 반짝 인기를 얻는 밴드쯤으로 여겨진다. 1962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도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하지 않은 팀이며 1998년 원년 멤버 칼 윌슨이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꾸준한 활동을 했는데도 말이다. 하기야 비치보이스는 밴드 이름에서부터 여름이 확 느껴진다. 이뿐만 아니라 데뷔 싱글 '서핀' 이래 매년 서핀 음악을 발표했으니 여름을 겨냥한 시즌 밴드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특히 밴드의 구심점이었던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적 역량과 대중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감각은 1960년대 초반 미국 젊은이들을 서핀 음악으로 열광케 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틀스였다. 비틀스가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즈'로 미국 시장을 침공했을 때만 해도 비치보이스에게 큰 위협감은 없었다. 오히려 미국 서부에서는 비치보이스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비틀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돌 밴드의 영광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스튜디오로 잠행한다. 비틀스다운 음악은 이때부터 쏟아졌고 비치보이스는 긴장하게 된다. 특히 브라이언 윌슨은 기존의 서핀 음악을 버리고 예술적 승화를 꿈꾸게 된다.
당시 브라이언 윌슨은 창작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무대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해 컨트리 음악에 탁월했던 기타리스트며 보컬리스트인 글랜 켐벨이 영입되었고 브라이언은 스튜디오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1966년 비치보이스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굿 바이브레이션스'가 공개된다.
앨범과 싱글은 모두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비치보이스는 단순한 여름 한철 밴드의 오명을 벗게 된다. 앨범의 성공에 고무된 멤버들은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모아 대중음악 최고의 예술적 앨범을 계획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 이유는 비틀스의 '서전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1967)가 이미 그 경지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항상 비틀스의 그늘에 가리고 여름 밴드의 오명을 쓰기는 했지만 비치보이스는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공공연한 비밀 한가지, 사실은 비틀스도 비치보이스의 음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권오성(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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