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평창 오대산

'정통성 콤플렉스' 시달린 세조, 넉넉히 품어준 산

태조 왕건과 이성계, 세조. 칼로써 왕조를 세웠거나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당성은 논외로 한다. 이들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정통성. 이들은 재임기간 동안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왕조, 정권의 정통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여기에 가장 많이 동원된 방법 중의 하나가 전설, 민담, 설화를 동원한 상징조작(symbol manipulation)이다. 주 내용은 '나의 집권은 하늘의 뜻'으로 귀결된다. 이성계의 경우 거의 전국적으로 이적(異蹟), 현신(現神) 등의 일화가 전해진다. 물론 미담, 영웅담 일색이다. 왕건의 경우는 후삼국 통일과정에서의 무용담, 특히 견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주류를 이룬다. 세조의 경우는 독특하다. 전자(前者)가 도참이나 풍수사상에 집착한 반면 그는 전적으로 불교에 의존했다. 이런 행적들은 특히 오대산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관대걸이, 문수동자와의 목욕 일화, 고양이상(像)과 관련된 일화들이 그것이다. 세조의 정치 선전장 오대산으로 떠나보자.

◆삼재가 들지 않는 명당, 예부터 명산 반열

설악산은 가산(佳山), 오대산은 명산, 태백산은 영산(靈山). 선조들은 세 산을 이렇게 품평했다. 오대산은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시대 사고(史庫)가 들어섰을 정도로 명당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오대산 등산은 진고개~노인봉~청학동 코스와 상원사~비로봉 코스 두 개로 나뉜다. 등산로는 진고개를 경계로 마주보고 있다. 두 코스를 연결하면 지리산의 화대(화엄사~대원사) 종주나 덕유산의 육구(육십령~구천동) 종주에 버금가는 멋진 종주코스가 가능하다. 현재는 두 구간의 연결고리인 동대산~진고개 코스가 안식년에 묶여있다. 본격 종주는 내년에나 가능하다.

폭서나 태풍으로 일기가 시끄러울 즈음 취재팀은 KJ산악회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버스는 월정사 앞을 지난다. 오대산의 명물 전나무 숲이 7월의 염천(炎天)을 뚫고 창공으로 가지를 펼쳤다. 버스는 서서히 상원사 쪽 계곡으로 오른다. 포근한 흙길에 새소리, 물소리의 이중주, 올 때마다 느끼는 소회지만 이 계곡을 차로 오르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다. 향 좋은 와인을 억지로 원샷하는 기분이랄까.

흙길을 올라 상원사 입구에 이르렀다. 주차장 입구에 세조가 어의를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가 우뚝 서 있다. 주인의 행적을 찾아 나서는 행렬을 말없이 바라본다. 아름드리 전나무 숲을 지나 상원사로 오른다. 이 길을 따라 세조의 에피소드도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오대산의 주 사찰은 월정사이지만 세조는 상원사에 유독 애정을 쏟았다. 관대걸이가 이쯤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세조와 문수동자가 계곡에서 등을 밀었다는 장소도 여기 어디쯤으로 추측된다.

◆세조의 온갖 에피소드의 산실 상원사

상원사는 세조가 본격적으로 정치 선전을 펼친 곳이다. 세조는 이 절에 자신의 이데아인 문수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성역화했다. 그는 상원사를 중창한 후 기념으로 천하제일의 종을 상원사에 봉헌토록 지시했다. 이때 선택된 종이 바로 '상원사 동종'이다. 이 종은 조선의 억불정책에 밀려 안동의 한 문루에서 시간을 알리는 시보종(時報鐘)으로 전락해 있었다. 종도 벼락출세가 있는 듯, 이 종은 관리들의 눈에 띄어 관가의 부속품에서 졸지에 종찰의 국보로 신분이 급상승했다.

문수전 아래 고양이상에 대한 전설도 흥미롭다. 세조가 이 절에 행차했을 때 고양이가 달려들어 어의를 물어뜯자 이상하게 여긴 왕이 내부를 수색하게 했고, 불상 뒤에 숨어있던 자객을 체포할 수 있었다. 이에 왕은 석상을 만들어 고양이를 기리게 했고 일대의 땅을 고양이에게 하사케 했는데 이것이 묘전(猫田)의 유래다.

상원사를 나와 경사를 오르면 사자암에 이른다. 사자암은 오대산 오방(五方)의 중심에 위치하며 불가에서는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좁은 계곡에 건물을 배치하느라 가람은 계단식으로 설계되었다. 넓고 웅장한 멋은 없지만 오밀조밀 들어선 당우(堂宇)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비로전의 멋진 추녀 선을 카메라에 담고 적멸보궁으로 올라선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을 모신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사리 중에서도 신보(神寶)인 정골(머리뼈) 사리를 모신 곳이다.

적멸보궁을 나와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본격적인 비로봉 등반이 시작된다.

비로봉 가는 길에 다람쥐가 지천이다. 이놈들은 길옆에서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과자, 빵을 곧잘 받아먹는다. 이런 습관에 길들여서인지 낯도 가리지 않고 손등에도 곧잘 올라선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 지루하다. 가끔씩 바람에 물결 치는 궁궁이, 물봉선, 층층이꽃 같은 야생화들의 군무에 피로를 잊는다.

◆노인봉, 설악산, 주문진 앞바다 한눈에

상원사를 나선 지 두 시간 만에 비로봉 정상에 올라선다. 널찍한 공터에 표지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남쪽으로 효령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동쪽으로 동대산과 노인봉이 실루엣으로 펼쳐졌다. 청명한 날이면 북쪽으로 설악산의 장쾌한 산세와 주문진 앞바다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등산로는 상왕봉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능선길이다. 완만한 경사에 평탄한 흙길, 고향 길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야생화 꽃길을 걸어 상왕봉을 돌아 나오면 바로 하산 길로 이어진다.

비탈길을 내려서니 임도가 일행을 맞는다. 그동안 비탈길과 경사에 시달린지라 평지의 출현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길가 들꽃들을 감상하며 하산 길은 계속된다. 어느덧 차들의 소음이 들리고 모퉁이를 돌아서니 상원사 입구 주차장에 이른다.

다시 관대걸이 앞에 섰다. 그 시설의 주인인 세조가 오버랩된다. 역사가들은 세조를 세종, 성종, 영조'정조와 함께 조선시대 개혁군주로 꼽는다. 재위 동안 왕권 강화, 군현 정비, 직전법(職田法) 실시, 군액(軍額)의 증강, 출판사업 등 일련의 쇄신책을 잘 이끌었다. 아마도 그는 이 치적을 바탕으로 후대에 성군(聖君)으로 칭송받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핸디캡인 '비정통'의 그늘도 희석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었던 정난(靖難)을 일으킨 점, 명분 없는 쿠데타를 옹호하기 위해 외척과 공신들을 키워서 훈구파라는 거대한 특권조직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후대 역사가들로부터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발버둥치고도 그의 재위 기간은 13년에 불과했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