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하루
고향에 정착한 지 3년째다. 인터넷 등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속도에 익숙한 도시의 삶을 접고 한적한 시골로 내려와 땅을 일구고 허름한 한옥을 고쳐서 가재도구를 갖추어 놓고 불을 밝혔다. 전등 주위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앉았으니 손볼 곳이 어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거창한 부농의 꿈이 아니라 단지 시골이 좋고,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이 싫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아내는 아이들의 뒷바라지 때문에 따라오지 않으려고 했다.
생업을 위한 직장생활을 과감히 접고 고향으로 내려오자 자녀 교육을 위해 아내가 발 벗고 나섰다.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하지만, 고향 내려온 첫날 오월의 아침은 정말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행복감이었던지! 신선한 바람과 푸릇한 풀냄새와 지저귀는 새소리는 도시 생활의 모든 걸 다 잊게 해주었다.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잠시 잊게끔 하는 풍경이었다.
급한 대로 퇴직금으로 학비를 대고 아내가 조금씩 벌어 생활에 보태 쓰니 그다지 심각한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었다. 농촌의 태양빛은 도시보다 더 뜨겁고 눈이 부셨다. 동트기 전에 나가 밭일을 하고, 해가 중천에 걸리면 서늘한 그늘에서 피서하고 소풍 온 기분으로 풋고추에 된장 찍어 도시락 먹고, 싱싱한 오이 따서 아삭아삭 씹어 먹고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다. 이런 나를 보고 한 친구가 '한심하다'고 하더니만 몇 주 전에 찾아와서는 '부럽다'는 말을 하고 갔다.
장마가 끝나자 고추는 다시 가뭄으로 메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양손에 물뿌리개를 들고 가서 물을 주니, 밖에서 뛰어놀다가 들어와 벌컥벌컥 마셔대는 아들처럼 생기가 돈다. 이들이 생기가 돌면 나의 하루 일과는 뿌듯하게 마무리된다. 내 아들, 내 딸, 그리고 아내가 오늘 하루를 잘 보냈을까? 대청마루에 누워 감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가족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른다.
박순원(청도군 운문면 대천리)
♥집
휴양림에서의 물놀이는 정말 신이 났다. 산속에 있는 얕은 웅덩이에서 첨벙첨벙 하니 어릴 적이 생각났다. 작은 고무배를 띄우고 한가롭게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키 큰 나무 잎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 청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즐거워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매미도 한껏 목청을 높여 피서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아침나절이라 물이 차가워서 입술이 새파래진 아이도 있고, 덜덜덜 떨다가 엄마를 부르며 물 밖으로 나가는 아이도 있고, 차라리 잠수를 하는 게 추위를 이길 수 있다며 코를 쥐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내 어릴 적 개구쟁이 놀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어 시간 동안 물놀이를 즐겼더니 배불리 먹었던 아침밥이 금세 소화가 다 되었는지 꼬르륵거렸다. 먹고 놀고, 또 먹고 놀고, 일 년에 한 번 이런 휴가를 즐기고 나면 충전이 된 것처럼 일에 더욱더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길 막히는 불편함을 피해 가까운 자연휴양림을 다녀오니 기분이 가뿐하다.
물놀이 기구와 남은 식재료, 그리고 옷가지들을 챙겨서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 그렇게 즐거웠던 물놀이보다 더 좋은 건 역시 '우리 집'이었다.
'집'이란 것이 하나의 구조물인데, 이 서른 평 남짓한 공간이 안락하고 행복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2박 3일 동안의 외출에서 돌아와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사계절 동안 적정한 실내온도를 유지해주고, 숙면을 취할 수 있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집'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곳이란 것에 새삼 고맙고 감사했다. 오랫동안 집 떠나 있다가 돌아온 사람같이.
문성권(대구 수성구 지산동)
♥등산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어
한발 한발 딛어 오르면
말없이 등을 내밀었어
올라 마루에 서면
기꺼이 발아래 엎드리고
나를 추켜 당당히 하늘과 맞세웠지
그의 등마루에 서면
억수 같은 폭우도
내 발목을 물속으로 잠그지 못하였고
그의 깊은 품속에서는
모진 태풍도 나를 휩쓸어가진 못했어
무작위 개발로 긁어내기 전에는
그것이 아버지의 등인 줄 몰랐어
파고들 품도 올라설 등도 다 없어진 다음에야
홀로 서 있는 나를 보았지
그제야 나의 잠재는
그 품속으로 나 있는 길과
딛고 설 수 있는 등마루를 기억하고
이제는
내가 엎드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김근수(대구 동구 방촌동)
♥전원생활을 꿈꾼다
내 인생의 봄, 여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문신처럼 새겨진 엄마 손의 검은 풀물이 싫어
도시로만 향하던 내 고개가 고향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 고단했던 기억들은 세월에 묻혀 가라앉고
고운 추억만 맑은 청주처럼 떠 있다
시골 마을에 작은집을 짓고
텃밭에 씨앗을 뿌려 싹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을 지켜보고
밤이면 살평상에 누워 별도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그렇게 늙어 가고 싶다
남편은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에
그림 같은 빨간 벽돌집을 지어준단다
복권이 당첨되면
흘긴 눈이 반백의 머리에 측은함으로 웃고 만다
팍팍한 현실에 꿈이 꿈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흙을 만지고 사는 전원생활을 꿈꾼다
짐승이 늙어 고향을 향하듯
정종숙(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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