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만국 공용어라고들 한다. 그만큼 음악은 모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그로 인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민속음악을 먼 타국의 이방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 한국음악 즉 국악을 서구인이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미의 밀림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던 원주민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과연 편하게 느낄 수 있을까.
유홍준이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저변 확대'라는 것이었다. 몇 년 후 저변 확대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질 만큼…. 하지만 그 후 대구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곳을 다니면서 여러 단체의 찾아가는 음악회를 직접 기획,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저변 확대는 참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악은 좋은 음악, 나쁜 음악으로 나눌 수 없고 고급 음악, 저급 음악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는 각자의 취향이 아닐까.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고상하고 너무 좋은 것이니 꼭 들어야만 해'라고 강변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나쁜 것이 아니며 자주 접해서 우리의 생활이 더 풍요로워진다면 좋은 일이지 않겠는가.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다보면 클래식 음악을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 문턱을 넘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열광적으로 호응하며 다들 즐거워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음악은 익숙함의 문제가 아닌가라고 생각해 보았다.
시장 논리에 의해서 우리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음악은 아무래도 대중예술, 대중음악으로 형성되어 있다. 대중음악은 학업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한 줄기 청량감으로 작용하고 아직도 분쟁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위안이 될 것이며 생존의 위협에 놓인 젊은 세대들에게는 희망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사회에 음악은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화예술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대구시의 문화예술 정책이나 각 구, 군을 중심으로 실시하는 지역민을 위한 행사들은 그러한 점에서 옳다. 비싼 티켓을 사서 좋은 공연장에서 멋진 음악회를 감상 할 수 있는 분들이나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서 그러할 수 없는 분들에게도 문화예술의 혜택은 골고루 돌아 갈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는 한국에서 기반이 잘 닦여진 생활체육만큼 앞으로 생활예술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우리 고장 대구에서 열리고 그와 더불어 많은 문화행사가 기획, 진행되고 있다. 이 분위기를 잘 살려서 음악은 적어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만국 공용어가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김형국 성악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