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이등별' 구하기

군부대에서 걸려온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는 전화를 받았다. 6'25때 세운 전공으로 수여된 2개의 훈장을 아직 전달하지 못했다며 아들인 내게 대신 수여식을 하겠단다. 화랑 무공 훈장과 은성 무공 훈장, 하지만 훈장을 받게 된 연유는 아쉽게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불현듯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이 숨겨졌던 아버지의 배와 다리에 남아 있던 흉터와 날씨가 궂을 때면 상처 부위가 아픈 듯 찡그리시던 모습이 스쳐간다.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6'25는 누군가에겐 이렇게 현재 진행형이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문득 군에 간 아들이 한 얘기가 떠오른다.

제대를 몇 달 앞두고 해군에 복무 중인 녀석이 얼마 전 휴가를 나와 하는 말이 요즘은 군에 갓 입대한 이등병을 이등별이라고 부른단다. 이유를 물었더니 다들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라 참을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만 힘들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간부들이 행여 탈영이나 자해를 할까봐 이등병 눈치만 보고 있으니까 이등별이란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훈련받고 있을 때 겪었던 기막힌 일이 생각난다. 부대 측의 배려로 신병들의 훈련 모습을 담은 사진을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었는데 몇몇 철없는 엄마들이 우리 애는 사진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며 항의 글을 올리는 걸 보았다. 어린이 집과 군대를 구별하지 못하는 엄마, 어떻게든 자기 자식 군에 안 보내려고 하는 군대를 간 적 없는 아빠와 그 사이에서 자란 아들, 그들에게 군이란? 국가란? 어떤 의미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할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마저 나랏일 돌보느라 자식들에게 소홀했는지 몸이 안 좋아 군을 면제 받은 자제분들의 비율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고 하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란 당연한 말이 새삼 그리워지는 시대이다.

아들이 해군에 입대하고 3달 뒤 천안함 사건이 터졌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아들의 동기생 한 명이 전사했다. 그 무렵 어느 음악회에서 연주된 천안함 희생 장병들에게 바치는 음악을 들으며 스크린에 비쳐지는 그들의 모습 속에 나의 아들이 있을 수도 있었고, 오열하는 가족들 틈에 내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연주회 내내 눈물을 훔쳐야 했다. 이렇게 국가를 위하는 일에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데 왜 내 자식만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군대란 사내아이를 남자로 만드는 곳이다. 육체적으로 강인해지고, 통제된 환경 속에서의 생활을 통해 협동심과 인내심을 기르는 곳이면서 젊은이들에게 한번쯤 조국의 의미를 헤아려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오래전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한겨울에 잠도 자지 않고 눈길 천리 행군 끝에 돌아온 특공대 병사들의 벗겨진 발바닥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형형하게 빛나던 그들의 눈동자에서 고난을 이겨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을 보았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우리의 아들들은 강인한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 다음 세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믿음직한 기둥이 된다.

다행히 천암함 사건, 연평도 사건 이후에도 해군이나 해병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은 늘고 있다는 흐뭇한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주위엔 부모 품속에서 귀하게만 자라서 세상 모두가 나를 위해 움직여야만 되는 줄 아는 젊은이들 또한 적지 않다. 살다 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큼이나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다. 자식들에게 안락함과 편안함만을 물려주는 것은 결국 살며 수없이 겪게 될 힘든 순간을 이겨낼 면역력을 키워주지 않는 것과 같다. 이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자기만 알고 남을 위해 헌신할 줄 모르는 위기의 이등별들을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할 때가 되었다. 부모들이 나서서 우리의 아들들이 나약한 이등별이 아닌 늠름한 이등병으로 입대할 수 있도록 키워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비로소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다음에 아들녀석이 휴가를 나오면 훈장 들고 아버지 산소를 찾아 함께 거수경례를 올려야겠다.

강민구(KMG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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