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처럼 무더운 여름에 일본 국민은 '절전'이라는 도전장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고, 지난해는 열사병으로 1천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가운데 올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전력 부족에 쩔쩔매고 있다. 전력 수요가 공급을 넘으면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과연 일본인은 이번 여름에 전기를 절약하면서 생명이 걸린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여름다운 여름을 보내지 않았다. 여름에는 어디에 가나 냉방이 너무나 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냉한 체질인 나는 '냉방병'에 걸릴까봐 여름에도 항상 상의와 양말 챙기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여름철 대표적 먹을거리인 팥빙수도 몸이 차가워지기 때문에 최대한 먹지 않으려고 한다.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은 인공적으로 여름을 더운 계절에서 추운 계절로 바꾸고, 새로운 병도 만들어 낸 것이다.
어렸을 때는 집에 에어컨이 아예 없었고, 여름은 당연히 더웠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마시는 시원한 보리차는 정말 맛있었다. 더위로 잠들지 못하는 밤에 어머니가 냉장고에 준비해 둔 얼음 베개를 머리 밑에 깔고 언니와 괴담을 나누면서 이불 위를 뒹굴었다. 주말에는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가족 모두가 집 근처를 산책했다. 눈부신 석양 속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길가의 분꽃 씨를 모아 내년 여름 건강하게 싹이 트기를 바라면서 다시 땅에 묻었다. 행복했던 그 시절의 여름은 먼 과거의 기억이 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올여름, 일본 정부는 기업과 일반 가정에 15%의 전력 감축을 목표로 내걸었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28℃에 맞추라고 권장했기 때문에 백화점이나 레스토랑, 역 등 어디에 가도 시원하지 않고 조명도 흐릿하다. 혼자 집에 있을 때에도 절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가능한 한 더위를 참고 온도를 28℃로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노력도 아랑곳없이 내가 일하는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온도가 언제나 24℃ 이하로 설정되어 있다. 내가 28℃에 맞추어 놓으면, 어느새 누군가 온도를 낮추어 버린다. 겉옷을 입지 않으면 추워서 닭살이 돋을 정도이다. 유학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본의 위기에 협력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며칠 전 도쿄에 갔을 때의 일이다. 무더위 속에 큰 트렁크를 끌고 우에노(上野) 역에 힘들게 도착해서 표를 사기 위해 냉방도 안 되는 지하철 홈에서 멍하니 줄을 서 있었다. 그러자 어떤 샐러리맨이 갑자기 "줄 맞추세요. 선이 안 보여!"라고 고함을 질렀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선이 직각으로 굽어 있었고, 나는 그 선에서 벗어나 있었다. 당황해서 "죄송합니다. 미처 선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사과했지만, 그렇게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내가 연구실에서 느꼈던 조바심도 이것과 비슷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가 정한 규칙은 모든 사람이 보다 더 생활하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혜이다. 그런데 어느덧 규칙 그 자체에 얽매여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몸에 배어 버렸다. 타인으로부터 비난받지 않고 규칙에 따라 바르게 살아가는 선량한 시민들은, 자기처럼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집단심리가 되어, 규칙에 대한 상대방의 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규칙을 강요하게 되어 버렸다. 나에게 설정된 28℃는 우에노 역에 그어놓은 선과 마찬가지로 무조건 지켜야 하는 규칙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지금보다 더 더웠지만, 땀을 흘리면서도 즐거운 생활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더위를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지혜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규칙에 속박당한 마음을 풀고 과거 그때의 여름을 되찾을 수 없을까. 거대한 자연으로부터의 도전에 지금 일본은 새로운 규칙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코야마 유카(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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