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두 개의 전시회, 두 개의 미술관

'심미적 사회' '문화 도시'란 말이 낯설지 않게 된 요즘, 미술이 대중화되었다고들 말한다. 아니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영화나 음악과 비교할 때 미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예술이 아니다. 나는 일 때문에 국내 최고의 화가, 조각가들과 이따금 만난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내가 그 미술가들과 비슷한 급의 영화배우들을 만날 때에는 사정이 달랐다.

어떤 예술가가 스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지표를 정확히 산출하기는 애매하다. 예술사회학적 관점을 근거로 내가 세워 본 판별 공식은 예술가가 창작했거나 출연한 작품의 유명세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작품보다 사람이 덜 알려졌다면 그는 아직 스타가 아니다. 반면에 로버트 드 니로나 조용필이 최근에 어떤 영화에 출연하는지, 어떤 음반을 발표했는지 몰라도 그 이름만은 알려졌기에 그들은 스타다. 많은 미술가 중에는 그런 사람이 아주 적다.

미술 전시회 오프닝 행사에 가는 것은 내 일 가운데 하나다. 유명 갤러리가 준비한 오프닝 파티에 가게 되면 먼저 그곳 관장이나 큐레이터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 다음에 작가와 대면한다. 그리고 자리에 온 다른 사람들과도 아는 척한다. 동료 작가들과 컬렉터, 전시 관계자들이 모인 여기에는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모든 일은 와인 잔을 들고 상투적이지만 매끄럽게 이루어진다. 만약 그림이 무작정 좋아서 그곳에 온 일반 시민이 있다면, 그가 도저히 끼어들지 못할 분위기가 흐른다.

대구시민회관에서 '망루전'이라는 전시 오픈식이 있었다. 이는 서울 용산동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을 추모하는 미술 전시회였다. 그곳에는 와인 병이 없었다. 대신 영정 사진 앞에서 추모시가 낭독되었고, 추모곡이 연주되었다. 무엇보다 내 의식을 세게 후려친 일은 유족들과 참여 작가들의 태도였다. 행사가 시작되자 그들은 일단 전시장 맨바닥에 앉았다. 시위의 기본은 행진이 아니라 땅에 앉는 것이다. 이 와중에 아빠를 잃은 서너 살짜리 여자애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바닥을 기어다녔다. 이것은 그 어떤 예술이 구현하는 페이소스와도 비교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난 그들 옆에 같이 앉지 못하고 뒤에 멀뚱멀뚱 서서 봤다. 지금도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앞에서 이야기한 두 전시회의 성격은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같은 점도 있다. 동업자, 동료, 동지가 아니라면 어울리기 힘든 게 미술이다. 대부분의 회화나 조각 작품은 다른 문화 콘텐츠와 달리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옅다. 지금 이 글이 실리는 신문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정보를 취해가는 공적인 이익을 목표로 정해 놓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최대다수의 행복과 특정한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대구에 건립되는 이우환 미술관은 시민들의 문화 권리와 미술 발전이 서로 엇박자를 내는 문제다. 세계적인 화가 이우환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대구에 들어서기로 했다. 200억 원에 가까운 비용은 대구시가 부담하고 정부도 거든다. 얼마 전 개관한 대구미술관에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데 미술관이 하나 더 들어오는 일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직접 와서 대구시장을 만나고 현장도 둘러봤다. 그런데 뭔가 일이 삐걱댄다. 명칭만 하더라도 '이우환 미술관'은 곤란하고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으로 가닥을 잡다가 다시 '만남 미술관'으로 바뀐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가는 이랬을 거다. 이미 일본 나오시마(直島)라는 섬에 이우환 미술관이 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그곳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시가 자기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짓겠다고 했다. 나라면 고맙고도 난처했을 것 같다. 이미 이우환 미술관이 있는데, 비록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자신의 예술을 아끼는 헌신적인 투자가에 대한 신의도 있는데 말이다. 이우환이 빠진 이우환 미술관은 참 싱겁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 자를 아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이우환은 미술계에서만 스타 작가다. 정치인은 반드시 득표 수를 고려해야 하고, 예술가 또한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관리해야 성공한다. 순결한 것 같은 예술도 세속적 질서 속에서 빛을 발한다. 미술관 이름이나 장소가 바뀐다고 성공할 예술이 실패로, 실패할 예술이 성공으로 바뀌는 게 아니란 말이다.

윤규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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