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히말라야에 부는 바람 -다섯 번째 이야기-

잠깐 졸았을까 싶은데 머리는 맑다. "그냥 오늘 축상까지 가시죠!" 가이드는 하루라도 빨리 무스탕을 다녀오고 싶어하는 눈치다. 해서 그는 일정을 연장하려고 말을 던진다. 이미 4시간 이상을 걸은데다 하루에 고도를 500 이상 올리는 것은 무리인지라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포터를 핑계로 차를 타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한다. 30㎏이 넘는 짐을 지고 앞서 걸어가는 포터의 뒷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여행자의 모습을 가이드는 이미 엿보았는지 모른다. 4천500루피로 세 사람이 축상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다는 제의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계란 부침과 짜이 한잔으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때운 후에 지프에 올랐다. 한 시간 남짓 거친 길을 오르고 내린 후에 차가 멈춘 곳은 축상이 아니라 땅베라는 마을 어귀다.

운전기사는 차는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여기서부터는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가이드는 차를 타기 전에 축상까지 차가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았지만 어둡기 전에 축상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짐을 챙겨 내린다. 바람이 이미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흐린 날씨 탓도 있었지만 다시 두 시간을 넘게 걸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거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1시간을 걸어 잘게 부서진 흙부스러기로 이루어진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축상 마을이 아득하게 보였다.

하지만 강이 굽이치는 곳에 자리한 축상은 드러낸 모습과는 달리 쉽게 잡히지 않았다. 자칫 발을 헛디디게 되면 순식간에 강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는 가파른 산비탈 길은 이곳이 고향인 포터나 가이드에게도 쉽지 않다. 하물며 초행길 여행자에게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길이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야 겨우 마을 입구에 닿았다. 롯지는 식당과 숙소로 나뉘어져 있고 비교적 깨끗해 보인다. 몸이 땀에 절었지만 목욕을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방문을 여니 마을 건너편에 붉은 절벽이 거대하게 서 있다. 선사시대 고대인들이 거주했다는 동굴이 절벽 중간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탐험대에 의해 답사되었지만 아무런 유적을 찾지는 못했다고 가이드가 말을 전한다. 식당에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마을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젊은 아낙이 갑자기 가슴을 풀어 칭얼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에 열중이지만 얼굴이 갑자기 붉어진다. 젊은 아낙의 가슴을 모성이 아닌 여성으로 본 부끄러움 때문이다. 식당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는다. 사랑하는 이의 눈썹을 닮은 가는 초승달이 고즈넉하다.

전태흥(미래티엔씨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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