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냉키, 분명하고 강한 부양 메시지…한숨 돌린 세계경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으로 촉발됐던 글로벌 증시 폭락 사태가 일단 진정 국면으로 돌아섰다. 9일 뉴욕 다우지수가 급등했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증시도 상승세로 마감했다. 국내 증시 역시 10일 개장 직후 반등하며 향후 안정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증시 안정화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우리 정부의 증시 부양조치 발표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로금리 조치가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미국'유럽 등지 수출 의존도가 큰 산업구조 특성상 국내 증시에 대한 낙관은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시 안정화 조치

금융위원회는 9일 임시회의를 열고 "S&P의 美 신용등급하락 발표 이후 시장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10일부터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시장 전체 상장종목에 대해 3개월간 한시적으로 공매도 금지조치를 시행한다"고 의결했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 미리 판 다음 판매 가격보다 싼 값에 다시 사서 차익을 얻는 투자 방식이다. 차익이 큰 하락장일수록 공매도가 기승을 부리고, 공매도가 성행하면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지난주말 S&P의 美 신용등급하락 발표 직후 8, 9일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2일 연속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주식시장이 요동치자 공매도가 크게 확대되면서 시장불안을 확산시키고 있다. 금년 상반기 일평균 1천억 수준이었던 공매도 규모가 4천억원을 넘기며 과거 최고 기록(2천346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것.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를 통해 시장 매물을 줄임으로써 주식 변동성을 완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우선 국내 대형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를 점검해 공매도 규제 이해 여부를 살필 계획이다.

금융가에서는 증시안정펀드(증권유관기관 공동펀드)도 거론되고 있다. 증시안정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투자심리 안정을 위해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예탁결제원 등 증권유관기관이 조성한 바 있다.

증시안정펀드는 2008년 11월 코스피 1,000선이 붕괴되자 조성됐고 2009년 2월까지 매달 상장주식과 국공채에 80대 20의 비중으로 투자됐다. 유관기관이 여유자금으로 주식을 사들여 주식시장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 경우 증권시장의 주요 매매주체로서 주가 급락에 적극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측은 "국민연금은 이번 사태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우량주를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 판단하고, 이날 오후 투자위원회를 열어 월별 자금운용계획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제로금리 조치

국내 증시 안정화 대책에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로 금리 조치 발표가 나오면서 세계 증시 위기감 역시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다.

연준은 9일 최소 오는 2013년 중반까지는 제로(0) 수준 금리를 유지키로 사실상 결정했다. 연준이 이처럼 기간을 명시해 금리 동결 방침을 밝힌 것은 처음으로, 최근 미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과 더블딥(이중침체) 우려 등에 따른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준의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날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경제회복세를 지원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 수준을 적정 수준에 도달하도록 연방기금 금리의 목표범위를 연 0~0.25% 수준으로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경제상황으로 미뤄 최소한 오는 2013년 중반까지는 이런 예외적인 저금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혀 동결 방침을 시사했다.

이는 지금까지 연준이 저금리 기조 유지 전망에 대해 "상당 기간"이라는 표현을 써왔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연준은 이어"앞으로 물가안정의 범위 내에서 더 강력한 경제회복세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의 범위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추가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음도 내비쳤다.

그러나 이날 연준의 성명에서 당초 시장에서 기대했던 이른바 제3차 양적완화 조치나 단기국채의 장기 전환 등 '특단의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유럽발(發) 재정위기, 국제 신용평가기관(S&P)의 미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등 대형 악재가 겹치면서 패닉상태에 빠진 전세계 금융시장을 연준이 '구제'해 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는 일단 무너진 셈이지만 경기진작을 위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낙관은 이르다"

국내외 금융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와 미국 연준의 잇단 대책에도 불구, 국내 금융시장 안정화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의 대외개방 정도가 높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6월 말 현재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1.0%로 대만(32.0%)에 이어 아시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경제의 기초체력, 외화유동성 측면에서 여건이 나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국내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수준으로 높다는 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똑같다는 것.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위험자산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국내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높다는 점 역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 신흥국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중국·동남아로 수출되는 물품의 최종 수요처가 유럽·미국이기 때문이다. 신흥국에서 일어나는 투자도 결국 미국·유럽의 소비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이들 국가의 경제가 둔화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9일 인터넷 블로그 기사에서 한국 증시의 폭락 원인을 외국인 주식보유비중과 지나친 해외시장 의존에서 찾았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보유비중은 3분의 1 정도로 매우 높아 대외적으로 악재가 있을 때 외국인들은 시장에서 손쉽게 주식을 팔고 나갈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식을 판 돈으로 안전통화로 인식되는 달러나 엔화를 사기 때문에 원화도 더불어 하락하게 된다는 것.

신문은 또 2010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51.6%가 수출에서 발생했으나 지금은 미국 경제가 매우 부진한 상태로 이는 한국산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의 구매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금융전문가들은 "결국 미국과 유럽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추가 조치가 나와야 국내 증시 안정화가 속도를 낼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언급한 것처럼 중동지역 금융비중을 늘리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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