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8년 전이다. 2003년 8월로 시계를 돌려보자. 대구는 온통 시끌벅적했고 축제 분위기였다.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대회였던 만큼 설렘과 기대감이 대단했다.
대회 개막 전부터 북한 선수단과 미녀 응원단이 오니 못 오니 하면서 대회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뒤늦게 찾아온 북한의 미녀 응원단은 구름 같은 인파를 몰고 다녔다. 북한 인민들은 굶주리고 있다지만, 뽀얀 피부와 싱그런 젊음을 가진 미녀 군단은 호기심과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단아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응원가를 부르던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어딜 가나 미녀 응원단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으니 대회를 빛나게 해준 최대의 선물이었다.
북한 선수단도 큰 환대를 받았다. 북한 선수들은 겉으로는 무표정한 얼굴을 했을지언정 시민들의 환대를 즐기는 듯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훈련장에서 북한 코치'선수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이곤 했는데 대화가 꽤 잘 통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국정원 직원들이 집요하게 가로막고 방해하던 기억도 난다. 모두가 신이 났고 즐거웠으니 사소한 다툼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회를 더욱 빛내준 것은 1만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였다. 그리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고상한 일도 아닌데 모두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적이 놀랐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경기장 주변을 정리하거나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다른 곳에서 '보수 꼴통 도시'라고 비하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대구 사람의 인심이고 본심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시민들의 노력과 봉사가 유명 스타 한 사람 없는 대학생들의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요인이 아니었겠는가.
이달 말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열린다. 개막일까지 17일을 남겨두고 있다. 대구시와 대회조직위는 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해왔고 7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 하나 흠잡을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열기는 8년 전보다 아무래도 못한 것 같다. 처음이 아니기 때문인지 당시와 같은 설렘과 기대감이 적을 수밖에 없어 대회 관계자들의 고심이 컸다. 정부의 지원과 협조도 다른 대회에 비해 미약하기 짝이 없어 실망스러웠다. 육상대회와 연계된 경제효과나 대구의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높아질지 불투명한 현실도 모두를 힘들게 했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조직위 관계자들은 "최근까지 대회 분위기가 뜨지 않아서 고심했지만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며 힘을 내고 있는 모습이다. 얼마 전만 해도 대회가 언제 열리는지 모르는 시민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8월 말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회 조직위에는 개인적으로 입장권을 구하려는 시민들이 점차 늘어나고 성공 대회를 위한 반가운 소식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대회를 앞두고 남자 1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나 '미녀 새' 옐레나 이신바예바 같은 스타들이 하나둘씩 대구에 입성하면 단번에 열기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이 육상 불모지이고 한국선수들의 메달 획득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대구시민들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는 시민들이기에 어려울 때 단결하고 돌파해온 전통을 갖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대회를 통해 시민들의 진정한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평창은 재벌총수들을 앞장세워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원하면서 대구는 쥐꼬리만 한 예산만 쥐여주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지만, 그것으로 실망하지 말자. 2007년 유치 당시부터 정부의 방관 속에 시민들의 노력으로 유치하고 준비해온 대회가 아니었는가. 애초부터 우리는 이번 대회를 잘 치러야 할 의무와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육상대회를 제대로 치르다 보면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고 대구'경북이 통합할 수 있는 힘과 저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회 기간만큼은 신명나게 즐기고 손님들과 맘껏 어울렸으면 좋겠다. 대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자.
박병선(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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