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 효공 때의 상앙(商革+央)은 철저한 신상필벌과 예외 없는 법 적용을 강조했다. 태자가 법을 어기자, 태자의 교육을 맡은 관리와 시종장을 대신 처벌했다. 이런 법치(法治)는 백성 통치가 쉽고, 부국강병을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뒤에 진이 전국을 통일할 힘을 쌓는 기틀이 됐다.
당시 그가 만든 법 중에 '십오연좌제'가 있다. 다섯, 열 가구를 조로 만들어 서로 감시하는 것이다. 죄인을 고발하지 않으면 허리를 베어 죽이고, 한 집이 죄인을 숨기면 같은 조에 속하는 모든 가구를 처벌했다. 또 여관에 묵으려면 누구든 증명서가 있어야 했다.
효공이 죽고 혜문왕이 즉위하자 엄한 법 때문에 기를 펴지 못했던 권세가의 탄핵이 잇따랐다. 태자 시절에 당한 원한이 있던 혜문왕이 그를 파면하고 체포하려 하자 상앙은 도망을 갔다. 국경의 한 여관에 들어갔지만 여관 주인은 국법에 따라 증명서가 없으면 연좌 처벌을 당한다며 투숙을 거절했다. 결국 상앙은 고향에 돌아가 반란을 꾀하다 붙잡혀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팔다리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했다.
우리나라에도 십오연좌제와 비슷한 법이 있었다. 성종 때 한명회가 호구조사나 징세, 범인 색출 등을 위해 제안한 오가작통법이다. 이 법은 나중에 천주교도를 색출하는 도구가 됐다. 독재 정권 때는 좌익사범에 대한 연좌제가 있어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감시 대상이 됐다. 친척 중에 좌익사범이 있으면 요주의 인물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취직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연좌제가 아직 없어진 것 같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인사청문회다. 주변의 누가 고위 공직에 앉는다는 소식이 들리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부모 자식은 물론, 사돈 팔촌에다 초'중'고등'대학의 동창, 선후배까지 도마에 오르기 때문이다. 잘난 인사를 아는 데 대한 대가다.
청문회를 통해 부도덕한 삶을 산 수많은 인사가 낙마했다. 그러나 낙마한 인사 중에 누구 하나 고발당하거나 처벌받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일반인 같으면 몇 번이나 검찰'경찰에 불려갈 짓을 한 것이 밝혀졌는데도 멀쩡하다. 그저, 부도덕한 사실이 드러나 공개 망신을 당하고, 주변 인사까지 연좌해 욕을 보였으니 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가 보다 할 따름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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