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먹을거리 골목탐방]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저렴하게 한잔…중'장년층엔 추억의 명소

대구시 동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이곳에는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젊음의 열기와 중'장년층의 향수가 이중주를 이루고 있다. 닭똥집(닭 모래주머니)의 쫀득쫀득한 맛과 저렴한 가격, 푸짐한 양으로 시민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여기 양념 반, 튀김 반이요!" 닭똥집 골목 곳곳에서 손님들의 주문소리가 이어진다.

◆형성 유래

이곳에서 30년째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꼬꼬하우스' 김옥년(76'여) 사장은 닭똥집과 평생을 같이한 산증인이다. 김 씨는 "1972년에 이두명'나춘선 부부가 현재 '삼아통닭' 자리에서 닭을 잡아 털과 내장을 뽑아 바로 요리할 수 있게 장만해주는 도계업을 하면서 닭똥집의 역사가 시작됐다"며 "당시 평화시장 앞 거리에는 새벽마다 인력시장이 섰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낙담한 심정을 술로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씨 부부가 막노동꾼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술안주를 개발한 것이 닭똥집 탄생의 역사다. 막노동꾼들 사이에 '평화시장 닭똥집은 싸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서민들의 목로주점으로 변해갔다. 이후 이 씨 부부는 식당업에서 손을 뗐으며 삼아는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게 된다.

이 무렵 꼬꼬하우스'포항통닭'평화통닭'제일통닭이 '1세대 닭똥집'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상호 옆에 '원조'란 수식어를 붙인다. 1990년대 중반께는 무려 58개의 업소가 성황을 이뤘으나 현재는 28개 업소가 영업 중이다.

궁전통닭, 꼬꼬하우스, 내왔수다, 대구통닭, 대원통닭, 똥집나이트, 만남의 광장, 명동통닭, 무릉도원, 부산통닭, 삼아통닭, 신암통닭, 아가씨와 건달들, 영천통닭, 오동나무통닭식당, 운수좋은 날, 은행나무통닭, 제일통닭, 진미통닭, 짱구,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평화통닭, 포항치킨, 합천통닭식당, 똥집본부, 타이타닉, 달감똥집, 고인돌….

◆닭똥집의 진화

이달 2일 오후 6시께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을 찾았다.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닭똥집에 곁들여 술 한 잔으로 회포를 풀기에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똥집골목에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지긋한 중'장년층들도 북적였다. 이곳에서 만난 김대호(47'회사원) 씨는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값싸고 풍성한 닭똥집을 즐겼다"며 "1987년 6'10 항쟁 등 민주화 투쟁 과정 중에 시국을 논하며 울분을 토로했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이 진화하고 있다. 1980년대는 주로 튀김똥집뿐이었으며 가격도 500~1천원대로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 정도였다. 처음엔 튀김똥집만 취급하는 독립메뉴로 출발했으나 최근에는 밀가루에 버무리지 않고 그냥 튀겨내는 누드똥집, 간장과 마늘로 소스를 만들어 버무린 간장마늘똥집까지 진화된 메뉴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똥집도 퓨전화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젊은 층은 이곳 식당에서 똥집뿐만 아니라 커피 등 다양한 음료를 즐기며 여가와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식당 인테리어도 진화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이곳에도 원조집을 비롯해 새로운 식당이 들어서면서 실내 인테리어도 젊은 층에 맞춰 깔끔하고 분위기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새로운 상권에 생긴 닭똥집 식당은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로 연일 젊은이들의 활력이 넘쳐난다. 1980년대 아날로그 안주문화에서 2000년대 디지털문화로 탈바꿈하고 있다.

"맛이 좋고 가격 또한 저렴하니 금상첨화죠. 회식 때마다 닭똥집에 가벼운 맥주를 곁들이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한 방에 날아가죠." 1995년 신세대 개념에 착안해 새로운 인테리어를 선보인 꼬꼬하우스를 찾은 권혁경(23'여) 씨는 닭똥집 예찬론을 펼쳤다. 친구와 함께 왔다는 김광태(40'회사원) 씨는 "양념 똥집의 맵싸한 맛에 중독성이 있어 날씨가 덥거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닭똥집을 즐긴다"고 말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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