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칠과 현찰, 밤실이와 밤시리, 너훈아와 나운하….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이름이다. 유명한 트로트 가수들의 이름을 살짝 비틀어 사용한다. 이들은 짝퉁 가수가 아닌 진정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들이다. 유명 가수를 닮은 것은 인생 보너스이자 덤일 뿐이다. 인생을 걸고, 자신을 닮은 유명 가수의 노래를 하고, 제스처나 말투, 복장까지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들이 사는 세계의 속살은 더 재미있다. 현철 이미테이션 가수로 현칠과 현찰이 쌍벽을 이루며 한참 활동하다 현찰이 불의의 사고로 숨지자, 현칠의 활동 무대가 더 넓어졌다. 방실이의 양대 이미테이션 가수로는 밤실이와 밤시리가 있다. 밤실이는 주로 대구경북과 강원도를 중심으로 중'장년층 위주로 활동하고, 밤시리는 부산경남을 주무대로 하면서 장'노년층을 상대로 공연을 펼친다.
수입도 짭짤하다. 유명 가수들이 직접 가지 못하는 경로잔치라든가 작은 시골마을의 행사에 직접 투입되는데 한번 행사에 갈 때마다 50만∼70만원 정도 받는다. 실제 유명 가수들의 개런티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이들에게는 활동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한 달에 평균 행사 10건을 뛴다고 했을때, 월 수입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투잡족도 있다. 낮에는 자신의 직장에서 일하고, 주로 밤에 변신을 한다. 가족이나 이웃까지 감쪽같이 속여가며 활동하는 이미테이션 가수들도 적잖다. 뛰어난 노래 실력과 프로 근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좀 더 들여다보자.
◆현철 이미테이션 '현칠'
전국적으로 수백 명에 이른다는 나훈아의 이미테이션 가수들과 달리 현철 이미테이션 가수는 전국에 2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3년 전쯤 현찰이 숨지는 바람에 이미테이션 가수 현칠의 활동 폭이 더 넓어졌다. 이젠 희소성 때문에 어딜 가나 반겨준다. 현철이 가지 못하는 곳에서 현칠이 대신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현칠의 본명은 은해기(56).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현재도 군위에 주소를 갖고 있다. 군위에서는 애향심 많은 가수이자 인기 가수로 정평이 나 있다. '삼국유사의 얼'이라는 곡을 직접 작사하고, 노래를 부르며 전국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군위 아리랑'과 '한밭마을 돌담길'이라는 곡도 준비 중에 있다. 이런 탓에 군위군수와 군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
현칠로 활동하게 된 사연도 흥미로웠다. 노래를 좋아해 1995년, 1999년 2번이나 전국노래자랑에 나갔는데, 사회자 송해가 두 번 다 은 씨에게 '뒤도 똑같고, 코도 똑같고, 뒤통수도 똑같네'라고 말해, 2000년에 아예 MBC 팔도모창대회에 출연했다. 그리고는 현철 이미테이션 가수로 공식 활동하게 됐다. 그동안 해오던 토목업은 계속하면서 이미테이션 가수로도 활동하는 투잡족이 된 것이다.
"참 복도 많죠. 현철을 닮아서 이렇게 또 다른 삶을 살게 됐습니다. 쉬운 건 아니었죠. 이미테이션 가수로 데뷔하기 전 낙동강 모래사장에서 마이크 대신 삽자루를 들고 현철의 히트곡들을 수천 번도 더 불렀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쌓여서 이제는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가수 현철의 사랑도 받고 있다. 현철의 신곡이 발표되면 소속사에서 MR반주기도 내려 보내주고, 현철이 입지 않는 무대복도 수십 벌이나 줬다. '현철과 현칠'이라는 제목으로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물론 자신도 현철의 자녀 결혼식에도 참석하는 등 좋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애를 쓴다. 이 탓에 현철보다는 현철의 아내가 그를 더 챙긴다.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데뷔 후 3년 정도 속이며 활동했는데, 아내의 친구가 TV에서 은 씨를 보고 얘기를 하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 이제 가족들은 가장인 현칠이 벌어주는 수입과 신나는 무대 때문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방실이 이미테이션 '밤실이'
'밤에 실한 여자'. 방실이 이미테이션 가수인 밤실이에게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고 물으니, '밤에 여러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돈도 많이 벌라고 지은 이름'이라고 답했다. 강원도 출신이지만 경북 문경에서 10년간 살았으며, 대구경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밤실이.
본명은 김영성(38'여). 방실이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한 지는 벌써 8년째다. 밤실이가 된 사연은 이랬다. 원래 노래를 좋아해 가수를 하고 싶었는데, 이미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현칠이 김 씨를 보고 터놓고 얘기했다. "너도 보니 니 이름으로는 그렇고, 요즘 대세인 이미테이션으로 활동해 봐라. 방실이 많이 닮았네!"
김 씨는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얘기를 듣고 보니 현실적인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밤실이로의 변신을 시도했고, 지금까지 잘 활동하고 있다. 방실이 체격을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참고 있기도 하다.
실제 가수인 방실이와의 관계도 돈독하다. 가수 방실이는 3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 활동을 중단한 상태인데, 밤실이는 이런 상황에도 그 빈 공간을 잘 메워주고 있다. 방실이가 아팠을 때,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김 씨는 "항상 방실이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쾌유해서 왕성한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밤실이는 요즘 강원도 양양에 머무르면서, 동해안 여름축제에 주로 등장하고 있다. 밤실이는 무대에 서면 주로 방실이의 '서울시스터즈' 시절 히트곡인 '첫차'와 '뭐야 뭐야' '아싸루비야' '서울 탱고' 등과 함께 트로트 메들리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준다.
◆현숙 이미테이션 '현숙이'
'전라도 현숙과 경상도 현숙이'. 현숙과 이미테이션 가수 현숙이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효녀 가수 현숙의 이미테이션 가수는 유일한데, 그 사람이 바로 경북 영주 출신의 현숙이다. 실제 가수 현숙은 이미테이션 가수 현숙이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잘해주지만 여전히 마음을 터놓고 밥을 같이 먹을 정도는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본 가수와 이미테이션 가수로서 동서화합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현숙이는 경상도 효녀 가수다.
이미테이션 가수 현숙이의 본명은 권종숙(46'여). 권 씨 역시 이미테이션 가수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근본적으로 가수 현숙을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머리 스타일을 현숙과 비슷하게 바꾸니까 길거리를 가다가도 사인 공세에 시달리게 되고,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도 상대방이 믿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의 가정 형편 등을 고려해 아예 이미테이션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고, 인생행로를 바꿨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고충도 토로했다. "사실 너무 똑같이 하는 것은 실제 가수가 꺼려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고, 절대 립싱크로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이미테이션 가수로서 어느 선까지 제약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도 털어놨다. 권 씨는 "초창기 활동 때는 가족들이 불안한 저를 보고, 객석에서 보지 못하고, 아예 차에 들어가서 보다가 호응이 좋으면 나왔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즐기면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현숙의 히트곡인 '오빠는 잘 있단다' '요즘 여자, 요즘 남자' '춤추는 탬버린' 등을 원조만큼 맛깔 나게 부른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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